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지난 해 7월 중국 내몽고 지역을 관광하기 위해 숭덕을 갔다. 평소 숭덕을 가고 싶은 차에 큰 기대를 하며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을 놓치지 않고 보려고 애썼다. 숭덕에는 1780년  정조시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0~1805)이 선배 홍대용이 중국 연경(북경)가서 보고 느낀 것 중에서 과학 지식을 듣고서 심취하였다. 그는 청나라 문화의 좋은 점을 배워 조선의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면서 현실 문제에 대하여 예리한 비평을 가한 당대 최고의 문사(文士)로서 한때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내가 내몽고 패키지여행에 들떠있었던  배경에는 연암이 답사한 '열하(熱河)'를 확인하고 싶었다.

 연암은 북경까지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자마자 청 조정에서 황제가 열하에 있는 '피서산장'으로 갔으니 다시 되돌아서 5일 낮밤을 이동하여 1780년 8월 10일 열하에 당도하였다. 조선의 정식 사행단에 속하지 않고 재종형 박명원(朴明源,정일품 내대신 부마)의 개인적인 권유로 따라 나섰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게 그곳 평민들과 어울려 여러 풍물을 알 수 있었다.

 이날 중국인 왕거인(흑정)이란 자가 연암에게 다가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선의 아름다운 점 몇 가지를 들려주시오" 하자 연암이 "우리나라는 비록 바다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으나, 네 가지 좋은 점이 있소이다. 온 나라의 풍습이 유교를 숭상하는 것이 첫째요. 황하처럼 큰 물난리가 날 걱정이 없는 것이 둘째요. 고기와 소금을 다른 나라서 빌지 않는 것이 셋째요. 여자가 두 아비를 섬기지 않는 것이 넷째로 좋은 점입니다"고 하자 "정말 조선은 좋은 나라이군요"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백년이 지난  1894년 오스트라인이 구한말 한국인에 대해 쓴 글을 보고서 외국인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는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당시 구한말은 외국 열강들이 다투어 개화의 물꼬를 틀려고 하던 때 외국인이 주로 지적한 것은 가난과 게으름, 관리의 부패 등이다. 이 부분은 백년전 연암이 지적했지만 이때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제국사'를 쓴 호머 헐버트는 조선은 일본이라는 외부 요인 보다는 자체 모순 때문에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고 지적 했다. 일본 첩자 혼마 규스케는 청일전쟁 직전 조선을 염탐하고 쓴 '조선잡기'에서 국제정세에 어두운 조선을 조롱하며 "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추측하는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면서 "(나라밖에) 계수나무를 장작으로 때고 옥으로 밥을 짓는 부자가 있는 것을 모르는 나라"라고 혹평하였다. 이들은 나쁜 점만을 꼬집었지만 우리 안에서 이런 현상은 없었는지 성찰해 봐야한다.
  
 1780년~2019년 우리나라의 모습을 볼 때 물질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로 모두가 노력하면 잘 살수 있다는 기대치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치를 앞으로도 계속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학을 숭상한다는 연암의 자랑거리를 긍정적으로 살리지 못하고 조선의 통치이념이 주자학적 가치관에 갇혀 당파와 쇄국논리로 후진성을 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모든 제도와 통치원리가 주자학만이 해결한다는 사고에 사로 잡혀 말로만 시비를 가리고, 말로만 정치를 하다 보니 큰소리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세상을 시끄럽게하고 있다. 남명은 일찍이 주자학만을 신봉하는 문인을 경계하고 글로만 읽히는 것은 유용한 학문이 아니라고 했다. 200여 년 전 연암이 다녀가면서 글로 남긴 '열하일기'를 다시 보면서 지금 외국인이 묻는다면 무엇으로 내 나라를 자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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