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고타마 싯타르타는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속가의 이름입니다. 그 싯타르타가 29세가 되자 마부 찬타카와 함께 애마인 칸타카를 타고 성을 넘어 카필라바스투를 떠날 때의 일입니다. 그들은 밤새 말을 달려 멀리 안전한 곳에 이르렀을 때, 싯타르타는 말에서 내려 먼저 몸에 두르고 있던 팔찌며 발목 장식과 왕자의 모든 장신구를 벗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찬타카에게 주고 애마 칸타카를 데리고 성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싯타르타는 카스트와 왕족 신분의 마지막 상징인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함께 모든 것을 벗어주고 맨몸으로 무상을 탐구하는 길을 나선 것입니다. 이미 그에게는 아름다움과 허영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이 아마도 어리석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싯다르타가 갈구하고자 했던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멋진 몸치장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적인 덧없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모든 것을 벗어 던진 그의 눈 속에 비추어진 광경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 속에 있다'는 말이 떠올려지는 순간입니다. 아름다움의 개념은 매우 변덕스럽습니다. 시대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차이가 존재합니다. 

 태국 북부 미얀마와의 국경지대에 사는 카렌족 여인들은 긴 목을 뽐내려 목에 황동고리를 걸고 살고 있습니다. 목이 길어서 '기린 여인'이란 별명을 가진 카렌족(long neck women)의 여인들은 아름다움을 위해 불편함도 감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인도의 소녀들은 아잔타 석굴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풍만하고 잘생긴 모습보다는 뼈대만 앙상한 빠리의 모델처럼 보이려고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의 시대적 차이입니다. 서부극에 나오는 무성영화 스타들은 작은 입술을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두툼한 입술이 되기 위하여 의학적인 힘을 빌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마도 멀지 않아 앵무새 같은 눈과 도마뱀 같은 입술을 가진 사람들이 아름다움으로 더 유명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의 힘을 빌어야 하는 강제성을 찬양하면 더욱 두드러지고 보편화됩니다.

 '아름다움의 과학'이라는 책을 쓴 저자 올리히 렌츠는 아름다움은 주관적이 아니라면서 아름다운 것은 유전적인 우월성이며 아름다움을 재능이라고 까지 선언하면서 객관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정형외과 의사들은 이 책을 소개하며 아름다움의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성형 장사에 열을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올리히 렌츠는 '아름다운 것은 좋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명백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전투에 자진해서 참전한 것과 같은 강박관념의 한 형태'라고 결론을 지으며 한걸음 물러납니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근거는 누구에게나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다만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 척도의 보편성에 다수의 의견이 일치하느냐로 정해집니다. 그러나 그 척도의 보편성이 새로운 가치 척도를 제시할 때 이 두 관념이 마찰을 일으키며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 새로운 가치의 창출은 역시 생각 밖의 탐욕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순수한 아름다움은 자신이 바라보는 눈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도환이 쓴 '마음을 가꾸어주는 작은 이야기'에는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어느 현명한 왕이 철학자들과 함께 왕궁의 테라스에 앉아 아름다움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마침 뜰에서는 왕자와 고관의 자식들이 놀고 있었다. 왕은 자신의 충직한 노예를 불러서 보석이 촘촘히 박힌 모자를 주고 말하였다. "이 모자를 가지고 가서 저기 뛰어노는 아이들 중에서 가장 잘나고 아름답게 보이는 아이에게 씌워주거라. 네가 보기에 가장 예쁜 아이를 골라 씌워주면 되느니라."

 노예는 모자를 받아 먼저 왕자에게 모자를 씌워 보더니 그다음에는 말쑥하게 생긴 아이에게도 씌어 보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계속 돌아가면서 다른 아이에게도 보석 모자를 씌워 보았지만 아무래도 흡족하지는 않았다. 모든 아이들의 머리에 모자를 다 씌워 본 후 마지막으로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모자를 씌워 보았다. 그가 보기에 자기 아들에게 모자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어 모자를 씌운 채로 아들을 왕에게로 데려갔다. "폐하, 모든 아이들 중에서 모자가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는 바로 이 아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미천한 소인의 자식이옵니다." 그러자 왕과 철학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과연 자네는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을 말해 주었구나. 여보게들, 잘 보았는가. 이처럼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 눈 속에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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