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정에서 우연히 읊음(山海亭 偶吟)

 왕이 탄강(誕降)한 곳과 십리 거리,
 긴 강물에 흐르는 한 깊도다.
 구름은 황마도(黃馬島)에 떠 있고,
 산은 푸르른 계림(鷄林)으로 뻗어 있네.

 十里降王界 / 長江流恨深 / 雲浮黃馬島 / 山導翠鷄林.

 
 구암사에 쓰다(題龜巖寺)

 동쪽 고개 위 있는 나무는 소나무이고,
 불당(佛堂)에서는 사람들이 절을 하누나.
 나 남명은 이미 늙었기에,
 애오라지 한 속의 지초(芝草) 물어야지

 東嶺松爲木 / 佛堂人拜之 / 南冥吾老矣/ 聊以問山芝.

 남명은 22세에 김해 조씨(曺氏)와 혼인하여 슬하에 아들 조차산(曺次山)과 딸 하나를 두었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병약하여 잃었다. 딸은 장성하여 김해 만호(변방 무관직)와 혼인하여 두 딸을 두어서, 첫째 외손녀는 친구의 아들이자 제자인 김우옹(1540~1603)에게 출가하였고, 둘째 외손녀는 망우당 곽재우(1552~1617)에게 출가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두 외손녀는 평범한 외모였으나 지혜롭게 가사를 돌보고 내조를 잘하여 김우옹은 대사헌에 이르고 망우당은 임란 의병장으로 경상우도 수호에 막강한 역량을 발휘하였다. 망우당은 붉은 망토로 신출귀물하게 왜군을 공포로 몰아넣어 승승장구하게 된 이면에는 부인의 지혜가 있었으니, 시아버지가 중국 사신으로 가서 받은 붉은 비단을 바느질하여 망우당에게 입혀서 '홍의장군' 이라는 별칭을 남기게 하였다. 망우당은 남명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부인의 내조를 수용하여  왜구 침략에 대비한 병마(兵馬) 궁술(弓術), 창검(槍劍)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남명이 김해에 터를 잡게 된 배경에는 부유한 처가와 외동딸의 시가 댁이 있는 곳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창령 조씨 족보에 의하면 남명의 조부 묘소가 강 건너 동래에 있었고  실제로 남명이 다녀간 곳으로 본다. 이런 저런 연유로 고향 삼가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학문연구와 강학을 일으켜 문풍이 미약한 김해지방에 새로운 기풍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산해정에서 우연히 읊음'의 시 에서 보면 가야의 수도 김해는 수로왕이 탄강한 곳이고 멀리 경주(계림)의 산줄기를 타고 푸른 산(시어산)의 묘한 기운을 받으며  남해 바다에 떠있는 섬(항마도-알 수 없는 섬)을 바라다보는 산해정은 더 없는 명당으로 자신의 생각을 실천 할 수 있는 곳임을 확신했을 것이다.
 '구암사에 쓰다'의 시는  김해에 있는 구암사를 소재로 쓴 시로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산해정에서 볼 때 동쪽 고개 위라면 대동 무척산 인근으로 짐작된다. 이시를 통해서 볼 때 구암사는 당시 많은 신도들이 출입한 것으로 짐작이 되며, 남명은 절에서 독서를 자주 하였고 스님들과 주고받은 시가 전하여서 불교를 배척하지는 아니하였다고 본다.

한상규 김해남명정싱신문화연구원장/남명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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