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장

 겨울이 가고 한반도 남녘 땅에 봄이 왔다. 이 땅에 나라 이름도 없고 임금과 신하도 없었다. 다만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등 9간이 있었는데 그들이 추장으로서 부락을 통솔했다.
 많은 사람들은 산이나 들판에 살며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며 살았고 바닷가에서 조개도 잡고 고기를 잡아서 먹었다.
 음력 3월 삼짇날 첫 뱀날 계욕일이다. 사람들은 예부터 행해왔던 대로 구지내(해반천)로 나왔다. 경운산 북쪽 감분마을 앞에서 시작하는 구지내의 모래 위로 흐르는 맑은 물에는 무지갯빝 버들치가 헤엄쳐 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조상 때부터 해오던 제사를 올리기 위해 그 당시 구야국 사람들이 즐겨 입었던 명주저고리를 벗고 흐르는 물에 몸을 씻는다. 허리까지 치렁치렁 길게 내린 머리칼을 말끔히 씻어 내기도 한다. 목걸이, 귀고리, 팔찌 등이 더욱 아름답게 반짝인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팔뚝과 등의 아름다운 문신들이 햇살에 선명하다. 수호신으로 새겨진 양쪽 다리 무릎 아래 고기 문신의 쌍어는 유난히 돋보이고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부정한 심신을 물에다 흘려보내고 정갈한 마음으로 재생과 풍년의 염원을 담는다. 어떤 사람은 동물의 토우나 사람 인형에 부정을 옮겨 물에 흘려보내기도 한다. 철없는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나와 작은 붕어만 한 버득치를 잡으며 놀고 있다. 어른들은 "얘들아, 오늘은 고기를 잡지 말거라. 잡은 것도 놓아주어야 한다"라는 말에 착한 아이들은 고기를 다시 물에 놓아준다.
 그들은 정성껏 제사를 올리기 위해 구지내 옆의 낮은 봉우리인 구지봉으로 올랐다. 구지봉에 당도하자 갑자기 안개가 서리고 서기가 감돌아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긴장하고 있는데 잠시 후 저쪽에서 위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리 200~300여 명의 사람들은 숙연히 귀를 기울였다.
 "여기 사람이 있느냐?"
 9간등이 말했다.
 "네 저희들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
 "구지봉입니다."
 "하늘에서 내게 명하기를 이곳에 내려가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되라고 하시었다. 너희들은 모름지기 봉우리 위를 파서 흙을 잡으며 이렇게 노래하라."
 공중에서 노랫말이 들려왔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만일 내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이 같이 노래하며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아 기뻐 뛰게 될 것이다."
 9간과 무리는 그말에 따라 기뻐하며 노래 부르고 발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서 무엇인가 내려오고 있었다.
 "앗, 저게 뭔가 허공에서 자줏빛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
 붉은색 보자기에 쌓인 상자가 내려와 땅에 드리워졌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보자기를 단단히 묶은 네 귀퉁이의 끈을 풀기 시작했다. 보자기 속에는 환하게 눈부신 금빛 상자가 있었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다. 그 속에는 여섯 개의 금빛 알이 꿈꾸듯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누구라 먼저랄 것도 없이 무릎을 꿇고 정중히 여러 번 절을 하였다.
 얼마 뒤 다시 보자기에 싸서 야도간의 집으로 가져갔다. 집으로 옮겨 대청마루 긴 의자에 모셨고 무리들은 각각 흩어졌다. 12일이 지난 이튿날 사람들이 궁금하여 금함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여섯 개의 알이 사내아이들로 변했는데 그 모습들이 훤칠하였다. 사람들은 다시 절을 하고 치하한 뒤 정성을 다해 모셨다.
 열닷새가 지나자 가운데 큰 사내는 키가 9척이며 눈동자도 두 개나 되었는데 처음 나타났다고 하여 수로라 하였고 사람들은 의논하여 이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하였다. 나라 이름은 가야국이라 했는데 6가야 중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기 돌아가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된 수로는 그 달 보름 건국주로서 대왕 맞이 절차를 밟은 후 왕국을 창건하고 바닷가 김해를 왕도로 하였다. 백성들은 술과 노래, 춤을 즐기며 나라의 창건을 자축하고 기뻐하였다. 남쪽 바다는 검푸르게 넘실거리고 황산강(낙동강)도 더 다감하고 유장하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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