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튀는 제자로서 '자로'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한 때 겉 치례를 싫어하는 야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자로는 공자에게  이렇게 깐죽거립니다. "화살을 만드는 산죽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바르게 자라고, 그것을 잘라서 화살을 만들면 잘도 꽂힙니다. 그런데 골치 아프게 공부가 무슨 소용입니까?" 이 말을 들은 공자는 "그 화살 역시 뒤에 깃털을 꽂으면 더 힘 있게 날아갈 것이고, 앞에 화살촉을 박으면 더 깊이 꽂힐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원을 꿰뚫을 수 있는 배움의 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통찰력을 가진 배움의 힘입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남다른 배움의 힘으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와 다르게 살아 계실 당시에 이미 거대한 교단과 교세 그리고 수많은 제자들을 이끄신 분입니다. 예수나 공자의 경우 출신 성분은 평민이었으며 거느린 제자도 예수는 고작 12명, 공자는 대략 70여 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들과는 다릅니다.

 태생은 왕자 출신으로서 거느린 제자만 하더라도 법화경에 등장하는 숫자가 만 이천 여명입니다. 신도의 숫자는 인도 전역에 걸쳐 있었으므로, 지금의 인구로 치환하면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근원에는 부처님이 왕자 시절 수학했던 학문의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먼저 무술은 불퇴전의 정진으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으며, 평생 인도의 전역을 유행하며 불교를 홍포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통치학은 가진 자를 이해하고 불쌍한 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통찰해 볼 수 있는 능력에 기여하였는데, 이는 거대한 불교 집단과 방대한 제자들을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이유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언어를 습득한 어학 능력은 당시 인도의 언어가 백가지나 되었던 언어 장벽을 쉽게 무너트렸습니다. 그래서 친숙한 그들의 언어로 다양한 민족들을 감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천문학은 부처님의 심오한 우주관을 갖추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처럼 완전함을 갖춘 부처님이 드디어 놀라운 통찰력으로 세상의 불평등을 직시하고 평등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평등은 더 더욱 빛이 납니다. 이것이 불교의 시작입니다. '법화경' 약초유품에서 부처님은 "나는 구름이 골고루 비를 내리듯이 온 세계를 만족시킨다. 태생이 고귀한 사람에게도, 태생이 비천한 이들에게도, 악인이나 선인에게도 똑같은 깨달음이 있다." 모든 만물이 평등하다는 가치체계입니다.  

 부처님의 이미지를 예수와 비교해 본다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성서의 예수는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구원의 손을 내밀었을 뿐입니다. 12명의 엘리트라고 하지만 단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또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지 않는 사람, 빵과 포도주 성찬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괴로움 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어 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구제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성서의 예수님 메시지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요한복음 6.47)라는 이 말은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신의 영원한 저주가 있다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뇌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는 그를 신의 아들임이 틀림없다고 믿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 즉 크리스천 밖에는 구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특권을 가진 엘리트들을 위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불교는 민중을 위한 종교이며, 중생을 위한 종교입니다. 불교는 누구에게나 다 열려 있었습니다. 불교는 어떤 카스트도 배척하지 않았으며 불가촉천민이라고 멀리 하지 않고 그들은 인도했습니다. 부처님의 제대로 된 교육 수학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관 아래 "나는 행복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도 모두가 행복해야만 한다."는 가정이 서게 된 것입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개과천선한 사람이 권좌에 오르면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관을 망각하고 한풀이에만 매달리는 현실과도 비교가 되는 가치관인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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