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불교의 경전인 법화경은 일월등명부처님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일월등명부처님은 글자 그대로 해와 달, 그리고 빛의 부처님입니다. 대승경전을 대표하는 법화경이 일원등명부처님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빛에서 모든 지혜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무명이라는 어둠을 깨트리는 빛인 것입니다.

 그러나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밀려나고, 빛이 없으면 어둠만 남게 됩니다. 어두움이 있는 곳에는 탐·진·치 삼독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빛이 비추어지면 탐욕심은 말끔히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빛이 쌓이도록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지혜롭고 슬기롭게 사는 일이며, 부처님이 주문하는 자비로운 삶인 것입니다. 바로 자비의 지혜인 것입니다.

 흔히들 불교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은 불교를 가리켜 기복의 종교라고 핍박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를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발생한 잘못된 단견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만대장경 어느 구절에도 복을 빌라는 구절은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다만 복을 지으라고 권할 뿐입니다. 부처님이 지으라고 권유하는 복이란 사랑과 지혜와 자비의 결정체를 말합니다. 복이란 우리네 중생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탐욕심을 버리는 일, 즉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부처님은 '우바새경'을 통해 "지혜로운 사람의 보시는 연민 때문이며, 남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며, 남도 보시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함이며, 모든 성인의 도를 실천하기 위함이며, 온갖 번뇌를 깨기 위함이며, 진리를 얻기 위함이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보시의 기쁨'이라는 큰 가르침입니다.

 중생의 세계는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며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법입니다. 함께 살면서 더불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자체가 축복 받을 만한 일일 것입니다. 고통은 나누어 가지면 작아지고 기쁨은 나누어 가지면 배가 된다는 이치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듯이 베풀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보시의 기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자비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자비 없는 지혜를 베푸는 것이 오히려 돋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정치가들이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그리고 종교인들은 교인을 모으기 위해, 유명 연예인들은 그들의 인기 관리를 위해 선행을 베풀곤 합니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 역시 사회적 공헌이라는 기업윤리를 앞세워 좋은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복을 구하는 지혜를 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이 참된 공덕이 되기 위해서는 자비로움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공덕을 짓고자 하나 자비가 없다면 그것은 선행을 한 것이 아니라 선행을 하려고 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국 양무제가 수많은 절을 짓고 수많은 스님들을 먹여 살렸지만 달마가 아무런 공덕이 안 된다고 한 것은 그러한 이유입니다. 아무리 남을 돕는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으로 세상에 축복꺼리가 안 된다면 그것은 바로 무소공덕인 것입니다. 목적을 가진 선행은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에 거짓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선행의 감춰진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분노하게 되고, 이루어지면 거기서 얻은 힘으로 순진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사욕을 채웁니다. 베품의 동기는 순수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