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곤 평전.

김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536p / 2만 3천 500원

 

 

금관가야의 왕도였던 김해는 뛰어난 많은 인물을 낳았다. 그 인물들 중에는 자신의 삶을 굳은 신념과 나라를 위해 아낌없이 바친 분들이 있다. 큰 뜻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김해의 인물을 기억하고, 그들을 기록하는 일은 멈출 수 없다. 김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이 나라에서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김해가 낳은 김병곤은 1970~1980년대 격변기의 한국 사회에서 인간의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온몸으로 엄혹한 시대와 맞서 싸운 인물이다. 

 '듬직하고 환한 산맥이었던 사람'. 소설가 김현서는 '김병곤 평전'을 집필하면서 이렇게 정의했다. 한 사람의 생애에 바치는 빛나는 말이다. 그리고 김병곤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김병곤은 1953년 김해시 한림면 퇴래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영민하고 의젓했던 그는 집안뿐만 아니라 김해김씨 문중 일가의 자랑거리였다. 일가 친척이 모두 '우리 곤이'라고 부르면서 아꼈다. 고향의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부산의 개성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를 다녔다. 부산고 시절의 김병곤은 '체격이 좋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맡은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성격까지 있어서 대대장을 했던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지·덕·체를 겸비한 사람'으로 친구들에게 각인돼 있다. 그 시절에는 고등학교에서도 교련 훈련을 받았다. 
 
 김병곤은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한 뒤, '한국사회연구회'에 가입했다. 우리 역사와 시대의 현실을 만나면서 그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대학 1학년 때 그는 광주대단지(경기도 성남)에서 도시빈민의 실상을 보면서 "민중에게 쓸모 있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1973년 서울대에서 문리대, 법대, 상대가 주도한 최초의 반유신시위가 일어난다. 상대 학회연합회장을 맡고 있었던 김병곤은 이 시위로 구속됐다. 1년 후 민청학련 관련자 공판에서 22살 김병곤은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최후진술에서 담담한 어조로 "삶의 길을 빼앗긴 민중들에게 내 몸을 바칠 수 있어 영광"이라 말했던 김병곤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그는 1974년 '민청학련', 1979년 '동일방직 사건', 1984년 '민청련 사건', 1987년 '구로구청 사건' 등으로 여섯 차례나 구속되었다. 민중이 부당한 일을 당하는 걸 보고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만의 굳은 심지로 묵묵히 남들보다 먼저 투쟁 속으로 들어갔고, 그의 전 생애를 바쳤다.
 그래서 '김병곤 평전'을 읽는 것은 김병곤 만을 만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만나는 것이다. 시대상황을 설명하고, 그때에 김병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생생하게 되살려 낸 덕분이다. 책을 읽는 동안 '듬직하고 환한 산맥이었던 사람'이라고 표현한 김현서 작가의 말이 계속 떠오른다. 포승줄에 묶여서도 환하고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사람들을 위로했던 김병곤의 얼굴도 함께 떠오른다.
 9월 14일과 15일 김해 진영한빛도서관에서 극단이루마에서 김병곤의 삶을 담은 연극 '괴물이라 불리던 사나이'를 무대에 올린다. 김병곤이 다시 김해를 찾아온다. 그는 여전히 강하고, 아름답고, 푸르른 서른 여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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