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지난 6월 22일 김해 문화원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을 창립 기념을 가졌다. 이날 김해지역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참석자들은 남명 선생을 평소에 흠모하고 따르려는 인사들로 정신적으로즐거웠던 시간 이였다고 하였다.

 그 배경에는 남명 선생이 김해 산해정에서 18년간 수양과 강학을 하여 제자들을 가르쳤고 개인적으로는 첫 부인인 조씨의 친정 곳 이자 처가에서 어려운 살림을 의탁하여 자신의 뜻을 이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22세에 김해출신 조수(曺琇)의 딸(1500~1568)과 혼인하여 낳은 외동딸을 김해 만호 김행에게 출가시킨 곳이고 가장 사랑하는 첫아들 차마의 병마를 극진히 돌보았으나 9살에 잃고서 외로움과 슬픔을 겪으며 18년간 살았기에 그에게는 희비가 만감한 마음을 묻어둔 곳이다.

 남명은 27세에 아버지  조언형(1469~1526, 단천군수,이조정랑, 승문원판교)를 잃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아버지는 권력층과 거리를 두었기에 미움을 받아 제주목사로 명을 받았으나 병으로 거절하였다. 그러나 조정 권력층은 이참에 제거하려고 병을 핑계로 왕명을 거역한다는 누명을 씌워 숙청하였다.

 아버지 사망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서 곤궁하였으나 다행히 처가는 김해에서 가산이 풍족하고 딸도 김해 부호에게 출가하여 학문 수양과 강학을 지소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당시 양민가의 풍속은 가산 상속에서 딸 아들 구분 하지 않고 균등하게 분배하였다.

 이런 풍속은 조선후기에 장자와 남아 우선시하는 풍조가 있을 때 까지 있었던 유교의 미풍양속이고 진보적인 것이다. 예컨대 영남 유림의 종사(宗師)인 점필재 김종직의 경우 아버지 김숙자가 밀양의 대부호 밀양 박씨 무남독녀와 혼인하여 처가 재산을 전부 상속 받아 선산에서 밀양으로 이거하면서 아들 김종직이 외가 재산으로 맘 편히 공부에만 열중하여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같은 큰 선비를 제자로 둘 수 있었다.

 남명의 경우도 당시 풍속에  영향을 받았으나 1548년 모친상을 마치고 김해를 떠나 합천 삼가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때 남명부인 조씨는 김해에 남겠다고 하여 홀로 갔다. 이후 부인은 1568년 69세로 김해서 사망할 때 까지 남명은 김해와의 연을 끊지 않고 왕래하였으니, 18년간 이곳에서 살았지만 실제로는40년 가까이 그의 흔적은 남아있다.

 신어산 자락 ‘산해정’서 남해 바닷물이 어울 어진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동래에 계신 조부님을 그리워했으리라 본다(조부의 묘는 부산 동래에 있다는 조씨 족보에 기록) 혼자 살아가기에 불편한 농촌 생활이 불편하여 1551년 새 부인을 두기는 했으나 늘 마음 한자리에 김해를 못잊어하는 그리움으로 시를 지어 달랬다. 군자에게 그리움은 정신적 보배다. 그리움은 외로움을 동반한다. 외로움은 인문학의 필수다. 지적으로 외롭고 정신적으로 고독하다 보면 예 선현의 정신을 찾아간다. 그러다보면 ‘나’를 찾게 되고 ‘나‘ 라는 인간관의 자유성과 개방성을 道로 귀착된다. 道의 목적 지향성은 인간의 그리움에서 표상된다. 여기에 실천이 따른다.


 필자는 남명이 남긴 글만을 해석하는 한문학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남명의 이름을 빌어 명예와 연구비에 목적을 둔 학자를 사이비라고 규정한다. 오로지 남명과 같은 정신세계를 그리워하여 1984년 대학원에서 '남명조식교육사상연구'를 발표한 이후 이 논제로 교육학박사(1990)를 받았다. 이후 지금까지 그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남명정신의 핵심은 경(敬)과 의(義)이다. 이것은 정신적 이상이자 실천상이다. 경은 이상이고 의는 실천이다. 이상이 없는 실천은 맹목적이고, 실천이 없는 이상은 공허하다는 철학자 칸트가 생각난다. 본 연구원은 김해 시민에게 이런 정신을 찾아주려고 설립했다. 본 연구원은 김수로왕의 고대국가의 위업정신과 남명정신이 복합한 한국의 대표적인 정신문화도시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 서민의 고통이 심하다. 그러니까 정신문화도 덩달아 퇴락하고 있다. 물질,과학은 '이룸'을 지향하여 일시적인 고난을 극복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풍요가 오래 가려면 물질면에서 이룸을 지향함과 동시에 '그리움'도 지향해야한다.

 수천년 전 김수로왕의 위업을 그리워하기에(남명도 그렇게했다) 조상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기 위해서는 정신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침 지방선거 이후 김해시민과 시장, 시·도의원들이 이 점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실천하려고 하니 김해 모든 시민은 행복 도시 ‘김해’를 위해 본 연구원이 견인 역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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