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우리 모두는 사회적 병리현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고달파서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의 지표를 잃고 있다. 경제적으로 잘살아 보자는 소원은 빈곤한자에게는 먼 꿈처럼 보여서 긴 터널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시대에 살고 있지만 빈곤층이 체감하는 가난은 여전하여 마음이 아프다. 현 실정에서 크게 문제되는 청년 실업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빚을 지고 살아가면서 연애, 결혼, 출산, 직장, 내집마련을 포기해야하는 소위 5포시대가 마음을 또한 아프게 하고 있다.

 요즘 주말연속극에 가난해서 출산을 거부하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서약, 대기업 입사를 지원했으나 연줄이 없어 밀리고, 부유한 집안에서는 한미한 집안 출신의 딸을 며느리로 부적격하다고 구박하는 장면이 이 시대의 아픔을 단적으로 지적해주고 있다. 급격한 소비 증가로 인해 황폐화 된 도시 아파트 단지가 대세를 이루면서 과잉소비로 인한 생활환경 유해가 심각하다. 개개인의 가치관과 윤리가 무너지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급증하면서 직장에서의 성희롱, 성폭력이 끊임없이 발생하여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인간적 교감이 아쉬운 사회다. 지난 세대는 생활환경이 열악했지만 인간이해와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좋은 교육환경에서 맘껏 누리고 있으면서도 뭐가 부족해서 그럴까 하고 의문을 갖는 것이 기성세대의 낡은 사고일까.
 
 우리의 정치문화에 진보층과 보수층이 비판과 비난을 구분 못하고 상호 비방하고 반목하여 국민을 분열하고 있다. 누구든지 사람을 좋아 할 수도 있고 미워 할 수는 있으나 통상 좋아하는 사람은 잠시고 미워하는 사람은 오래간다. 한국인의 정서는 자기와 관련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이 어쩌다 오점이 있어도 덮어주고, 미워하는 사람이 오점을 남기면 쉽게 넘어가지 않는 정도가 심하다. 언어는 성품에서 나온다. 거짓으로 낯빛을 선한 척 하는 사람 중에 어진사람을 보지 못하였다는 공자의 말씀처럼 사람은 자신의 오점을 감추기 위해 포장을 하지 말고 내면을 가꾸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세상 이치가 영원한 선도 없고 영원한 악도 없고, 영원한 긍정도 부정도 없기에 무엇이든 행한다는 보장이 없고, 부정한다고 해서 무엇이든 행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못한다. 세상에는 지자(智者)도 필요하고 인자(仁者)도 있어야 역사를 역동적으로 이끌기도 하고 차분하게 정리를 한다. 지자는 사리에 밝아서 물처럼 막힘이 없고 인자는 의리에 편안해지고 중후한 모습이 산과 같다고 했다(智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論語) 진보적이라는 의미는 진취적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다소 이상이 높은 사람이다. 고집이 센 사람은 양심과 신조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는 다소 보수적인 사람이다. 이 두 가지를 균형있게 갖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부득불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경우가 있다. 전자는 성품이 지나쳐서 다소 서두르고 거칠어서 목적달성에 급급하다. 후자의 경우 의지가 약하여 침묵을 지키거나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다.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국가적인 큰 틀에서는 같은 의견을 보일 때도 있고, 다를 때는 균형 감각을 갖추어 이성적인 비판과 판단이 있어야 한다. 아픈 사회의 처방은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만큼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해주라” 는 논어에서 찾아 새길 필요가 있다는 능근취비(能近取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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