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편집국장

 구정 연휴가 눈앞이다. 공식적인 휴일만 4일이다. 제사를 지내고 부모님과 가정을 방문한 친척에게 세배를 드리고, 처가도 방문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다. 봉급쟁이에겐 이런 번거로운 절차보다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연휴가 언제나 그랬듯 반갑기 그지없다.

 그런데 올해 구정은 마냥 기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씁쓸해함을 넘어 짜증을 내는 이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휴일 연휴를 기다리며 일을 하지 않을 생각에 가슴 부풀어 있는 필자에게 영업자들이 매년 내뱉었던 '이놈의 명절 없었으면 좋겠다'는 아우성이 더 크게 들리는 요즘이다.
 
 근로자들의 평균 시급은 올랐지만 풀죽은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봉급이 오르면 소비가 늘게 되고 소비가 늘면 경기가 살아나 자영업자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문재인 정부의 판단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유례없는 한파와 미세먼지가 살아나지 않는 경기와 버무려져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 세월이 한탄스럽다는 것이다.
 
 김해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 설 연휴 지역 기업의 평균 휴무일수는 4.2일이다. 달력에 표기된 빨간 날이 4일인 것을 감안하면 지극히 평이한 수치다. 하지만 상여금을 지급하는 업체 비율까지 들여다 현시대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김해지역 기업의 60%만 설날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100곳 기업 중 40곳의 근로자가 구정 보너스를 손에 쥐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휴일이 소폭 늘어난 반면 상여금 지급업체는 줄어든(지난해 68%) 수치다. 예전에는 기업들이 보너스를 많이 주는 대신,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늘리기에 혈안이었지만 현재는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줄이며 보너스를 최대한 아끼려 한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경기 상황과 최저임금 인상 등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구정을 앞둔 경기 상황은 실업급여 신청자 수를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1월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 수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3년 이래 가장 많았다. 고용노동부의 '1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급여 신청자는 모두 15만 2천 명으로 지난해 1월 신청자 11만 5천 명과 비교해 3만 7천 명(32.2%) 늘었다. 실업급여는 구조조정이나 폐업, 정년 등 비자발적 실업 추이를 보여주는 지표이기에 지금의 일자리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이 된다.
 
 구정 연휴 전인 지난 10일과 11일 재래시장과 대형마트를 둘러봤더니,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속되는 한파의 영향인지, 재래시장 쪽은 예년에 비해 손님이 절반 이상 줄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도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구경나온 사람과 장을 보러 나온 이들로 복잡하기만 할 뿐 재래시장과 비교해 별반 나아보이지 않았다.
 
 대목을 앞두고 소비자들의 지갑 상황이야 빤하지만 장바구니 물가는 대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기록적인 한파에 폭설까지 겹치면서 장바구니 물가의 바로미터인 채소 가격이 폭등했고, 과일과 육류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풋고추 값은 한 달 전보다 74% 올랐고 애호박, 오이도 46% 상승했다. 감자와 당근은 물론, 명절 제수 용품 중 빠질 수 없는 과일도 가격이 많이 올랐다. 돼지고기 삼겹살만 가격이 약간 내렸을 뿐, 설 선물로 많이 구매하는 한우는 10% 가량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농산물과 더불어 수산물도 산지 해역의 조업이 부진한 탓에 가격이 오름세다. 최근 잦은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배들이 조업을 나가지 못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이런 골치 아픈 사연이야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열심히 살아갈 게 뻔 하지만 '명절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자영업자의 푸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 구정 연휴 전이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