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남명의 국도 사랑 정신은 이민족에 대한 확고한 경계의식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난명이 살았던 당대는 북으로 야인이, 남으로 왜구끊인없이 보다 질하였다. 이에 대하여 남명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재자들과 이민족의 격퇴 를 논의하기에 이른다. 남명은 《동국통감》을 읽으며 우리의 역사를 명화히 인식하고, 국토산하의 여러 곳을 오가며 여기에 대하어 에징어린 눈길을 보낸 다. 가락국의 수도인 김해에 산해정을 시이 놓고 생활하면서 수로왕을 떠올리 기도 하고,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지나며 포석정에 들러 신라의 멸망을 인 타까워하기도 한다. 또한 고령에 살았던 매무인 정사현(鄭師賢,1508-1535) 을 찾아가서는 주산에 있는 가야왕들의 무덤을 보면서 옛 일을 회고하기도 하 고, 죽연정에서 본 가야산과 낙동강의 어울이심에 대하여 감동하기도 한다. 특 히 투어 걸음에 가쁜 숨을 내쉬지 않으면 오를 수 없다는 삼가식현 (三呵息峴) 에 올라 국토산하를 감회이린 눈길로 내려다 보았다. 이 때문에 국토를 유린 하는 이민족, 특히 왜구에 대한 분노는 더욱 강화될 수 있었다.

서로 더불어 사방을 둘러보니 동남쪽에 파랗게 가장 높이 솟은 것은 남해의 뒷산이고 바로 동쪽에 물결처럼 널리 가득 차서 서리어 엎드린 것이 하동 · 곤양의 산들이다. 또 동쪽으로 은은하게 하늘에 솟아서 검은 구름과 같은 것은 사천의 와룡산이다. 그 사이에 혈맥과 같이 서로 웨이고 뒤섞여 엉킨 것은 과 바다와 포구가 경락처럼 얽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나라는 산하의 긴 하이 위나라가 보배로 여기는 것 이상이어서, 만경 너른 바다에 다달아 있고 백치(百雉)의 성곽에 의기해 있으면서도, 오히려 거듭하여 백성들이 조그맣고 추잡한 섬 오랑캐에게 곤란을 겪고 있다. 그러니 이찌 그 옛날 길쌈하는 실이 적은 것은 돌아보지 않고 주나라 왕실이 멸망할 것을 근심한 과부와 같은 걱정을 하지 않겠는가?  
위의 글에서 눈여겨 볼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 번째, 국토산하를 사람의 몸에 비유했다는 점, 두 번째, 국토는 대단히 견고한 요새와 같다고 한 점, 세 번째, 왜구에 짓밟혀 백성이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한 점이 그것이다. 첫 번째에 서 남명은 그 자신이 얼마나 국도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즉, 먼저 동남쪽으로 솟아 있는 남해의 뒷산, 동쪽으로 펼쳐진 하동과 고양의 산들, 그리고 사천의 와룡산을 둘러보면서 그 사이에 있는 강과 바다 또는 포구들이 혈맥과 경락처럼 얽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령은 산을 우리의 몸에, 강과 바다를 우리의 몸을 흐르는 혈맥과 경락으로 보았던 것이 다. 이는 국토산하를 생명력이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두 번째에서 위나라의 험한 지세와 비교하면서 우리 나라의 지세는 위나라 이상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넓은 바다와 높은 산이 있기 때문이라 했 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에 있다. 두 번째와 같은 요새를 갖고 있는데도 불 구하고 왜구가 국토를 유린하여 백성이 심각한 곤란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이 다. 그러니 남명은 우리의 몸과 같은 국토산하를 왜구들이 유린하고 있다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증폭시켰다. 그의 작품 속에 '대마도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모두 이같은 문제의식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남명은 급기야 제자들에게 병 법을 가르치는 한편, 국난타개를 위한 대책을 묻기에 이르렀다.

우리의 국토산하를 유린하는 왜적에 대한 방책은 '책문제(策問題를)‘ 통해 고민하였다. 왜구들이 제포를 자신들에게 돌려 달라는 것이나 대장경을 인출해 갈 것을 요청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조정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서이고 또한 우리를 우롱해보자는 심산이라고 보았다. 그리나 조정에서는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도적에게 예물을 주려고 한다면서 유약한 조정을 비판하고 있다. 이같은 사태의 원인은 조정 내부에 있다고 했다.

왜구들과 결막한 역관이나 신하 혹은 내시들이 정보를 팔았기 때문에 대책을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왜구가 먼저 안다는 것이다. 이에 남명은 왜구를 제압할 인재가 우리 나라에 없음을 한탄하고 자신이라도 나서서 여기 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괴로운 심정을 토로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남명의 국토산하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삶의 궤적과 밀착되어 있다. 내륙과 해안,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우리 국토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함께 그 속에 사는 민초(民草)들의 애환을 절감하였던 것이다. 남명은 여기에 바탕 하여 국토를 생명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였다.

즉 국토산하를 우리의 몸 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는 우리의 국도가 인간의 탐욕스러운 물질석 만족 축구의 공급원도 아니며 어떤 외세에 대한 폭압적 침탈행위를 받을 그 어떤 것도 아닌 사랑하고 공경해야 할 대상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많고 추잡한 섬나라 오랑캐들이 국토산하를 유린하고 있으니 남명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 었다.

남명은 여기에 대한 대책문제를 제자들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우리는 여 기서 남명의 국토 사랑 정신이 백성 사랑 정신과 밀착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다음호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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