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호

하명호(시인,수필가)

 

◈ 약 력

-김해문인협회 회원

 

장마 비도 아닌 봄의 비는 요양병원 유리창 외벽을 타고 흐르니 이 계절에 비가 구슬프게도 내리고 있네요. 구순 나이도 훨씬 넘어가서 낼 모래가 인간 천수를 누리는 백세가 낼 모래입니다. 그렇게도 힘이 드셨나요? 바라보이는 만수를 못 이루겠습디까?
한 구술 적어내려 하니 지나온 세월은 만감이 교차하여 오더니 매일이 바라보이는 어머니 기력이 쇠잔하여 그렇게도 초롱 하여 반짝이던 당신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 본지가 엊그제 였네요. 그래 달포 전인가요? 오래 되지도 않은 그 어느 날 감겨진 눈 사이로 그렇게 억지로 떠 보이는 무언가 전해주고 싶어 하시어 말씀 전해 주시려 하시는 맑은 엄마의 눈을보았답니다. 며칠 전부터는 눈꺼풀 조차 풀리어 힘이 들어 열리지를 않더란 말입니다. 그래도 찾아와 주는 이 자식들의 발자국 소리와 귓전에 불러 보는 막내의 목소리와 자식들의 소리에 가늘게 떨리는 천사의 음성을 듣고만 있었답니다.
눈가에 눈물 샘도 말라가고 이 자식들이 와도 못 알아보시지 못하니 안타까운 심정을 잘 알고 있답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 더니 일곱의 자식 모두는 배 아파서 낳은 당신의 새끼들 입니다.
어머니 나이 들어 늙어 쇠잔을 하니 어느 자식 하나 편안히 집에서 모시지를 못하고 쓸쓸하니 고려장 요양병원에 내보내 버리고는 노환으로 홀로 집에서 모시지도 못하고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는 이 자식들의 심정은 어떻게 말로 다 표현이 되겠습니까?
당신에게는 어린 자식도 벌써 나 반백의 흰머리 되어 이제는 엄마 곁에 마주하고 앉아 있는 날이 그래도 많아지고 있네요.
환우 복 위로 가쁜 숨만 내어 쉬고는 따스하니 점차 온기 사라져 가는 침대 밑에 앉아 뼈만이 앙상한 엄마의 손을 잡아 봅니다.
그 옛날 시골에서 농사일에 찌들어 있을 때에도 분 화장한 얼굴 같이 그렇게도 고웁던 피부 예쁜 그 옛날의 엄니의 얼굴은 이제는 자그맣게 쪼그라져 변해버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 자식은 주책없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로 요즘 들어 잦아오는 걸 보니 흰머리 뒤덮인 나이 훌쩍 육순이 그렇게 넘어 버렸답니다.
이래 백세나이 못 넘기고는 그래도 원없이 살아 온 한평생을 가슴 속에 안고서 살아 노년에 그렇게도 원하시던 평온 속에 또 다른 이승의 세계로 훨훨 날아 천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 가시려 합니다. 어머니 인생 돌아보건 데 경산시 와촌 면 죽전 동에 터를 묻어 젊은 나이에 아무것도 없는 오십 리 길 뒤로 하고 옹 가지 동리 화서리 62번지로 시집온 지 팔십 년 세월이었습니다.
반딧불이 등을 삼아 무릎이 아프 도록 삼베 길쌈 이어가고 봄이면 인적 끊긴 골짜기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도라지 밭에다 여름이면 칡 덩굴 팔아 주고 들로 산으로 호롱불 밝히어 들어 자식 새끼들 건사하느라 일평생을 그렇게 사시였습니다.
돌이켜보 니 젊은 홀아비 할아버지와 장성하여 저 멀리 군위 부계면 세락골 화선이 고모와 그래도 자매라 양지막골 신 훈장님에 시집간 칠선이 고모, 남자리 동리 할아버지의 여동생 고모 할미들 식솔 챙겨 드리고 한평생 그리고 눈에 넣어도 밟히질 않을 당신의 자식들 다들 챙겨 주셨지요.
한자식 한 새끼들 모두 챙긴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집안에 큰 형님이 일찍 돌아 가시고 난 이후에 홀로 뒷간에서 상심을 하여 계시는 모습을 보았지만 저희들에게는 내색조차 없으셨답니다.
그래도 즈그 아버지 돌아 가시고 조카들 모두 먼 이국 나라로 이민을 가 버리고 아직껏 소식이 없으니 잘들 살고 있겠지! 하시고는 그래도 장손 성훈이 놈은 보고 싶다 하셨지요.
천만리 머나먼 이국 땅이라 제 할머니 먼 길을 떠나 가시는 날에는 안 돌아 오 실까 싶어 그래도 저희는 문 열어 두고 있을 납니다. 그래도 요즘은 병원에 들르는 회수가 잦아 중간에 늘이 예비에 신경이 쓰였는가 보지요? 병원을 들를 때마다 홀로 된 처지가 그렇게도 불쌍히 보이던 가요.
- 밥은 챙겨 먹느냐?
- 얘들은 자주 찾아오고?
그렇게도 걱정을 하시니 전 엄마한테 이유 없는 투정을 부리곤 했었지요. 세월이 흘러가는 걸 망각이라도 했나 봅니다.
얼마 전이었지요? 병원 침대에서 다니러 온 저 보고 어린 시절의 얘기를 들려 주셨어요. "어느 늦가을에 손이 곱아 호호 손 불어 흰 서리가 내리던 음력 구월 초나흘 날 즈그 할배 돌아 가실 때 날씨 겨울에 들어 그렇게 춥게만 느껴지니 메둥이 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라 느그 할배 돌아 가시고도 뻘쭘 하니 누워 계시는 병풍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 백설기 떡 우걱거리며 먹고 있는 게 그렇게 천진 난만해 보이더라" 어머니 당신에게는 아직 어린 아이로만 보이니 저도 벌써나 했건만 환갑이 그렇게 지났답니다.
한평생을 살아 오시면서 수많은 곡절의 삶을 이어 오신 어머니! 올망졸망하니 칠 남매 모두 장성하여 이렇게 모두 옆에 든든하니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사위들과 손주 손녀들 버팀목들이 되어 있답니다. 이제 행복하니 한평생을 원없이 사시다가 성부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주님의 품으로 들어 가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남아있는 자식들의 안녕과 축복의 기도를 하여 주세요. 마지막으로 놀이해 보는 동하,미소네가 잘 챙겨주고 있으니 걱정을 마시고요!
늘어진 참깨에 콩이며 팥하고 머리통 함지박 호박에다 길게 늘어진 지붕 곡선 따라 이어진 박동이 진정 가을이 두렵게 다가 오네요. 두어 질 진정 가을이 두렵네요. 꽃을 사랑하시더니 원없이 깔아 드릴께요! 이제 모든 걸 내려 놓으시고 한 편의 시로서 배웅을 하고자 하니 성모가 기다리는 천국의 정원 꽃들로 돌아 가셔요! 잘 가셔요~~엄마!
   < 화 서 리 >
앞산에 길게 늘어선 자작나무는
하늘을 가리우고 서 있다
소쩍새 소리 옹 가지
동리에 정적을 깨우고 울어 댄다
나이도 모르는
수백 년 느티나무 고목에 녹색의 생명이 피어난다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릴 뿐
당신의 숨소리 텃밭에 베로니아는
가지 찢어질 듯 늘어서 있다.

진한 팔십 년의 영국댁 친구 안부 물어온다. 인적 끊긴 팔각정 정자 아래 계곡 수풀 사이 한가로이 노니는 피라미들 오침 시간 깨울라 살레 꽁지 흔들며 인사를 건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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