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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정신이 다른 유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같은 시대적 아픔을 스스로 체득하고 개혁하려는 것이었다. 55세에 단성 현감에 제수 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려 국가의 안위와 민생의 아픔을 지적하고 국왕의 덕치를 강력히 호소한 것이나, 69세에 왜구의 횡포가 극심하자 머지않아 이 땅에 전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제자들에게 그 방비책을 논구하게 한 것은 그 좋은 증거이다.
공자와 안연의 학문에 보이는 실천적 모습을 읽어내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 남명정신에 내재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다. 그의 학문과 사상에는 현실에 대한 손쉬운 타협보다는 맑은 정신과 우뚝한 기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그러하다. 선비의 고절한 기상은 항상 삼가고 근엄하며 정성을 보존하는 가운데 경이 체득되고, 이 경은 밖으로 의와 결부되면서 실천적 역량을 일구어 내게 된다. 한강 정구는 스승의 이러한 정신에 주목하면서 "천지의 순수하고도 강인한 품덕을 받고, 바기개는 천고를 덮었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의 실천정신은 국책을 시정하려는 의도에서 수 차례 올린 상소문을 통하여 나타났고, 〈민암부〉 등의 여러 문학 작품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남명이 굳건한 실천적 교육자상을 확립하고 있음에 대하여 다시 확인하게 된다.
4. 선비사상과 민본·외민·애민정신
1) 출처사상과 벼슬살이 문제
유학에서 출처사상은 곧 은일사상과 통하며, 공자가 당시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산림에 숨어사는 사람들을 말한 데서 출발한다. 즉 '고금의 인물을 제대로 논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출처를 본 연후에 그 기림과 비판을 논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자는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지로운 나라에도 살지 아니하며, 천하세상에 도가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출처라는 것은 세상에 나아가 벼슬살이를 하며 경세제민에 참여하는 것과 물러나 재야산림에 머물면서도 정신적 지조를 지키고 후학들을 가르쳐 올바른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유교의 정치사상에서 나온 용어로서 유학사상의 중요한 실천론이다.
주희 또한 출처에 합당한 인물을 진정한 군자로 보고 있다. 유학은 보다 현실적인 사회 · 정치적 학문사상이기 때문에 간단히 '벼슬하지 않으면 의롭지 못하다'라는 말을 하기 쉬우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자신의 '벼슬살이'가 세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함이 없이 나아가는 것은 큰 잘못이다. 오히려 천하의 선비는 천하의 이익을 위하여 재야에 처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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