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사회복지사협회장 김진경

김해시사회복지사협회장 김진경

어느덧 사회복지라는 영역에서 일한기간이 만11년째 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한 그 시점부터 이니 십년하고도 1년을 더 일을 한 셈이다.

사회복지의 시작은 낮은 곳에서 부터 복지관에서 가정봉사원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요양원의 원장으로 현재는 재가복지시설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늦깎이 공부를 시작한 40대 초반, 김해대학교에서의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시작된 나의 복지사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다.

누구나 다하는 공부는 낮에는 현장에서 밤에는 학교에서 그렇게 가야대학교를 거쳐 인제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의 석사학위까지 받기위한 긴 여정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다.

만학도의 길은 매우 험난했고 현장에서의 많은 일들을 헤쳐나가며 오롯이 나혼자 이겨내야 하는 역경이었다. 무심코 들여다본 야간대학교의 수업열의와 교수님들의 열정에 아!하고 나도 모르게 그곳에 발을 디디게 되고 그런 그분들의 열정에 내가 동참하면서 나의 사회복지 가 시작되었다.

때마침 그때 67세의 젊은 나이의 친정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면서 생활속에 복지가 시작 되었다. 엄마는 하루하루 힘들게 견디면서 치매라는 병마와 싸우기 시작했고 몰랐던 이유들이 하나둘씩 알아가면서 내가족에서 내이웃 그리고 김해라는 폭넓은 곳으로 나의 하루는 사회복지영역이라는 틀속에 갇히게 되고 말았다.

누군가는 의학공부를 하여 알아낸 지식으로 환자를 돌보지만 나는 오롯이 나의 경험과 주의의 지혜로 말미암아 환자를 돌보게 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가장 빨리 접할수 있고 가장빨리 나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길은 공부 뿐이었다.

그래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현장을 접하고 주위의 경험을 토대로 요양원내의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열정이 넘쳐서 어르신들과 함께 할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한달에 15개가 넘는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을 지겹지 않게 하였고 이곳저곳에서 챙겨온 농수산물과 고기들로 어르신들게 대접하였으며 오롯이 배운 것 그대로 실천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에 내 친정어머니는 치매증세가 점점 나빠져 갔고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고 손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내가 다른 사람을 돌보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그 동안에 내 어머니는 외롭게 쓸쓸히 채매라는 웅덩이속에 점점 빠져들어 헤어나올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는 절규 했지만 내 어머니는 그만 다른 세상으로 가시고 우두커니 나혼자 쓸슬히 하늘을 보고있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괜찬다..경아야.. 엄마는 니가 함께 있어줘서 잘있다가 왔다 ,걱정하니 말아라...”하는 엄마의 음성이 들렸다. 내가 요양원에 있으면 요양원으로 내가 요양병원에 근무하면 요양병원으로 이리저리 함께 모신다는 이유로 엄마를 괴롭힌건 아닌지 나는 지금도 많은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엄마를 가장 많이 바라보고 가장많이 함께 생활을 했지만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 곳이 있었을텐데 내 욕심때문으로 그리했을까 하는 후회가 지금도 가슴 언저리로 넘쳐나는 눈물이 그 이유다.

그렇게 어머니는 가시고 나는 엄마와 함께 지내던 요양원을 나와 지금현재 하고있는 재가센터를 차렸다.

그래도 재가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몸이 많이 불편하지 않으신 분들이 대다수여서 맛있는거 사들고가서 “어머니”하고 부르면 본인들의 딸인냥 반겨주고 손잡아주고 지금까지 약 140여명의 어르신들이 만3년동안 우리센터를 거쳐가셨고 또는 아직도 나와 함께 계시지만 어르신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나 나의 반김들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함께 해온 직업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직업이 나의 생활이 되고 바꿀수 없는 천직이 되어버린 것은 내 친정어머님과 아버지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들을 부를 때 “어머니.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달려 가는것이다.

누구는 어쩌면 그렇게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냐 우리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인거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만 11년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 어르신들에게는 든든한 사회안전망으로써의 역할을 센터가 하고있고 1만5천개 전국의 재가센터의 역할이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큰 틀속에서 지금도 현장에서는 요양보호사가 어르신들과 함께 수행해 나가고 있는것이다.

복지라고 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고 높으신분들은 쌀 몇 포대 놓고 기념사진찍고 하는 것이 그렇게 나누는 것이 복지가 아니고 곁에서 119처럼 언제나 필요하면 달려가는 든든한 효 나누미가 바로 현실속의 복지인 것이다.

김해시사회복지사협회장을 2020년에 맡으면서 생활속에 복지를 하고 있는 한사람으로써 우리가 하고있는 일들을 알릴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 회장직을 맡게 되었고 현재도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그 수혜자가 대상자들도 당연 누려야 되지만 그 대상자들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김해의 사회복지사들을 대신하는 회장이 되고 싶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재가센터는 방문해서 찾아가는 노인돌봄 서비스이고 혼자서 먹는 식사가 혼자서 하는 모든일련의 일들이 스스로가 감당되어지지 않을 때 요양보호사의 따뜻한 손길로 대상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무기력한 시간을 떼워주고 맛없는 식사가 사람으로 하여금 맛이 있어지는 그런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방문요양이다. 찾아가는 돌봄서비스 인것이이다.

그러다가 2018년에 한 시골에 계시는 어르신이 목욕을 하고싶어하는데 목욕탕은 너무멀고 요양사는 이동할수 있는 차량이 없어 택시를 타고 목욕탕에 가시는 것을 보고 목욕차를 사야겠구나 하고 수소문하여 1톤트럭을 구입하여 이동형목욕차량을 약 2개월에 걸쳐 개조하였다.

이 이동형 목욕차량 안에는 욕조와 샤워기,드라이기,보일러,태양광을 이용한 전기,보조용밧데리,등을 탑재한 어마무시한 목욕차량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차량내에서 모든 것이 다되는 기분좋은 음악을 듣고,기분좋은 차도 한잔 마실수 있는 만능 이동형 목욕차량이 완성되어 지금 만 1년 6개월째 김해 전역을 돌아 다니면서 어르신들에게 목욕서비스를 해드리고 있다.

2명이 한조가 되어 김해노인복지센터를 알리고 어르신들께는 최고의 서비스로 만족을 드리는 자타공인 전문적인 서비스와 전문적인 케어로 어르신들게 만족을 선사하고 있다.

사회복지란 늘 거창했던 것이 아니고 가까운곳에서 가려운곳을 긁어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겟다고 생각한 나는 생활속에 작은 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현재 맡고있는 김해시사회복지사협회장 이라는 타이틀도 이런 나에게 걸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내가 하는일에 자신감이 있으며 그에대한 성취감이 있다고 한다면 현재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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