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장 공학박사 김재호

경남기술과학고등학교장 공학박사 김재호

요즘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이순신과 어머니에 대한 글을 접하면서 어머니는 위대한 예술가 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어머니 없는 사람이 없다. 여자들의 인권을 폄하 한다고 하는 남자들도 여자들이 길들이고 먹이고 입히고 정신세계도 만들어간다. 그래서 여자는 한 인간의 조각가라고 말할 수 있고 예술가 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갈등이 많은 사회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본다.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자청한 한 명사가 그 이유를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훌륭한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고 대통령감하나 만들어 달라고 이화 여대에서 강의를 선택했다고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훌륭한 사람 뒤에는 좋은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이 공식이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임종이 가까운 아픈 중에도 문안 온 아들을 보고 나는 괜찮다.
백성을 잘 돌보고 전란에 시달리는 백성의 한을 풀어주라 고 했다.
그리고 라마르크 어머니는 어릴때 하도 밥을 빨리 먹는 아들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매일 바구니에 그림을 그려 하나씩 보고 먹도록 해 천친히 먹는 습관을 길러 줬다고 한다.
율곡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지극정성으로 예절과 학문을 가르쳤다. 그리고 조선 숙종 때 서울 육모재에서 학성이라는 나이 어린 형제를 서당에 보내고 있는 가난한 과부댁이 있었다.
삯바느질과 채소를 가꿔 팔아 겨우 살아가는 몰락한 선비의 가문이었다.
어느날 이 어머니가 뒷 뜰에서 남새밭을 가꾸는데 호미 끝에 와 닿는 쇳소리가 들렸다.
파 보니 커다란 솥 속에 금은보화가 가득 담겨져 있음을 보았다. 전란이  많았던지라 이렇게 재물을 땅속에 묻어 두고 피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았기에 이처럼 우연한 횡재가 비일비재했다.
학성이의 어머니는 이 황금의 솥을 다시 땅속에 묻어 버리고 이 횡재를 없었던 것 처럼하고 이사를 해 버렸다.
인고와 피땀 흘린 정성으로 두 아들을 가르쳐 과거에 급제까지 시켰다.
늙어 죽게 되었을 때 임종의 배개에 두형제를 불러놓고 그 이야기를 했다.
財(재물재)는 災(재앙재)인데 무고히 큰 재물을 얻으면 반드시 재앙이 따르는 법이다.
사람이 나서 궁핍하고 고난한 때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너희들이 어릴 적부터 의식의 안일에 빠지면 공부에 힘쓰지 않을 것이요, 가난하지 않으면 어찌 재물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며 또 어찌 정당한 재물을 얻는 재미를 안다는 말인가? 라고 했다. 솥이 묻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고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이것이 전통적인 한국의 모성애다.
 현종 때 명재상 김좌명의 집에 글도 알고 똑똑한 최술이라는 나이 어린 하인이 있었다. 상전이 호조판서가 됐을 때 술이를 재물을 관리하는 서리(書吏)로 발탁했고 그것이 미끼가 되어 부잣집 사위가 되기까지 했다. 그런지 어느 날 술이 어머니가 상전을 찿아가 술이를 서리직에서 사임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보리밥도 제대로 끼니를 이어오지 못하던 우리 모자가 대감님 덕분으로 밥도 먹게 됐고 부잣집과 사돈을 맺게도 됐다.
한데 부잣집 사위가 된 후로부터는 남들에게 말하기를 쌀밥도 질리고 뱅어국도 맛이 없어 못 먹겠다 한다니 그 얼마 동안에 사치한 마음이 이지경이라면, 재물을 맡은 직무에 오래 있으면 그 마음이 날로 더해져 마침내 죄를 범하고야 말 것이니 외동 자식 벌 받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는 노릇이다. 겨우 헐벗고 굶지 않을 錄(록:봉급)바디로
옮기게 하고 그 말을 술이에게 일체 말아 달라고 했다.
이것이 전통적인 한국의 모성애인 것이다. 그리고 잘 기른 자식은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축복이다. 애국은 사람을 잘 기르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르칠 교육의 덕목에 좋은 시사점이 된다고 생각돼 청소년들이 이글을  읽고 도움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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