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정신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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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함양이 교학의 목적이라면 현실에 대한 비판과 판단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격물치지이다. 이치를 궁구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도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뜻에서 치지는 격물과 관련하여 끊임없는 반성적 사고를 요구한다. 자신을 닦아 가는 수기지학 역시 도덕적 인간완성에 그 목덕을 두고 있으니, 인간완성의 과정 속에서 부단한 경의 실천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남명은 경이 이치를 궁구하는 근본이면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보고, 배우는 사람이 힘써야 할 일은 심지를 굳게 하는 일이라 하였다. 이는 경이 학문의 근본임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진리탐구는 인간 본연의 자세로 지적 호기심이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존양과 성찰을 통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 유학의 교학적 목적이자 태도이다. 이렇게 볼 때 남명은 "학문을 하는 것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놓을 수가 없다. 모름지기 힘을 써서 당겨 올려야 하며 한 걸음이라도 물러서면 전진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씩 전진하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경' 이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일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진실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욕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명은 이것이 공부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학문이 매우 바르고 식견이 매우 밝아서 그 도가 마침내 굳건해지기를 간절히 희망하였다. 이것이 성취된다면 남명은 부귀와 빈천 어느 곳에서도 공부는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것은 남명의 교학사상이 그 때에 적합한 시중의 도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욕에 대립되는 '천리'를 확보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해 나간다면 성리학의 범주에서 볼 때 최고의 가치가 터득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천 위주의 교학은 무엇 때문에 중요한 것일까? 사실 선현들이 교학을 하면서 실천하는 공부, 즉 하학에 대한 일을 많이 언급하고 고상한 형이상학, 즉 상학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하학'은 실천 가능한 실용적 학문을 뜻하며, '상학'은 이치를 강구하는 관념적인 학문을 말한다. 남명은 이러한 뜻에서 하학공부를 강조하면서 이같은 실용적 학문을 통해 이념적 학문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상학에 대한 일을 알려고 한다면, 먼저 하학에 대하여 알아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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