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

옥천봉은사 주지

사)정신건강교육개발원 이사장

 

 

 

오늘은 노자 선생님이 말씀하신 무위(無爲)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모든 생명체의 속성은 인간을 포함해 모든 이기(利己)를 근본으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를 닦고 수행을 하는 것도 신앙을 갖는 것도 뭔가 이익이 되니까 하는 것이다. 어쩌면 효도도 봉사도 그럴 것이다. 아무런 이익도 까닭도 없다면 굳이 무엇을 하려고 할까

여기서 노자 선생님의 無爲(무위)도 이익이 되니까 무위를 하는 것이지 아무런 이익이 없다면 무위(無爲)를 하겠는가? 무위가 어떤 이익을 줄까? 무위하면 보통 하릴없이 어슬렁대고 나태한 사람,

또는 무위도식 한다 라고 하는 대표적인 무위에 대하여 단적으로 표현 하는 소리도 있다.

노자 선생님의 무위(無爲)를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걸까? 그것은 또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인문학적 화두에 노자가 제시하는 무위(無爲)는 정확한 해답을 제시 하였으리라 생각 한다.

 

노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무위(無爲)에 대해 알아보자

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하되 함이 없는 함, 하되 함에 머물지 않는다. 라는것을 표현한 말이다.

불교에서도 무위(無爲)와 비슷한 의미로 볼 수 있는 “머물지 말라”는 뜻을 가진 무주(無主)라는 단어가 있다.

조금은 어려운 말이기에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되 한 것에 머물지 않고 집착이 없을 수가 있으며 그것이 우리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 하고 구현 할 수 있을까?

직설 하자면 “바로 지금에”만 몰입해서 살면 되는 것이다. 시간을 지금이라는 단위로 끊을 수는 사실 없다. 나의 의식과 우주의 자연 순리의 의식이 하나가 되어야만 무위(無爲)를 구현 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려면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일체에 머무르는 바가 하나도 없어야 지금에 살 수 있다. 그래야만 온통 지금만이 존재하는 시간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를 굳이 언어로 표현 한다면 고정된 실체가 없다라는 불교의 공(空)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 된다. 공(空)은 거대한 하나의 생명의 근원이며 몰입의 세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대는 사실 지금만이 존재 할 뿐이다.

과거와 미래도 오직 생각으로만 존재 하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고 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뿐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무위(無爲)를 못하고 생각으로 과거와 미래에 머물기 때문에 지금에 살지 못한다.

자연을 보라 끊임없이 변화 하면서 지난여름을 그리워하고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색을 내던가?

과거가 개입하지 못하고 미래가 개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괴로움이 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무위(無爲)의 삶은 열정적인 삶을 살던 괴로운 삶을 살던 지나온 것에 머물지 않고 올 것에 머물지도 않으면 괴로움 없이 드라마틱하게 사는 것이 무위(無爲)의 이익이 아닐까 싶다.

부처님께서도 49년간을 드라마틱하게 설법과 전법을 하셨으면서도 열반에 드실 때 나는 한마디도 설한바 없다라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신 대표적인 분이시다.

성인들께서는 육신이 사시는 시대와 공간은 다르실지라도 한 시.공간속에 머무시는 것 같다.

노자 선생님의 무위(無爲)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메시지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시간에도, 했던 일에도 사랑에도 너무 머물지 말고 그려려니 하면서 살라는 말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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