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불우에서 부른 노래

 

 

이어서 계속>>>
제6장 불우에서 부른 노래

 

김종간 향토사학자

차라는 글자가 당대에 만들어졌음을 『다경』이 확인시켜준다 하였다. 실제로 『다경』이전의 문헌에서는 차라는 글자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보다 한 획 많은 도자가 있다. 도자는 서한시대 사람인 왕포의 동약에 실린 "포별팽도 무양매도"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다. 학자들은 이 도를 차로 해석해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 대에서도 도릉이라는 지명을 볼 수 있는데 반고 권 15상에 :도릉절후 유흔:이 나온다. 육우는 『다경』에서 시대미상의 「다릉도경」에 대해 "다릉이란 능곡에 차명이 나기 때문에 이처럼 말한다."고 적고 있다.
삼국시대는 오의 제4대 황제 손호때 '다천'을 하사 받았다고 적고 있으나 '도천'을 후인들이 고친 것이라고 한다. 도를 「한화중사전」에서는 ①씀바귀, 방가지똥, 앵속, 엉겅퀴, 국화과의 다년초 ②물억새의 이삭 ③띠꽃 ④약초 ⑤해악 ⑥속임 ⑦차 등 일곱 가지로 적고 있는데 최고의 식물로서 인간의 보배로운 식품이 된 문화사일까?
구암귀석 구암암
신어산은 이름처럼 김해불교의 향기가 깊고 짙다.
해발 630여m의 산은 김해시 삼방동과 상동면을 경계하며 북풍을 막고 남풍을 안은 아늑한 지형 덕분에 많은 고찰이 있었으며 선어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 산속에 여러 사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예종때 지리지는 "신어산 구암사로서 선종에 속한다."고 적고 있다.
또 『읍지』에는 "신어서림 주산에 있는데 암자에 우물이 있어 맑고 맑으며, 청명한 날에는 대마도를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영구암이라 부르며 신어산의 정상부에서 만날 수 있다. 고장에 전해지기를 가락국 때 창건했다고 하나 고증의 유물과 기록은 없다.
다만 파괴된 탑재 일부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전부 불에 타 순조 때 중건하였으나 1968년 3월에 다시 화재로 소실하고 12월에 직므이 암자를 재건하였다.
『읍지』에 조식, 조이추, 조구령, 김남수가 구암에 대한 시를 남겼으니 오늘의 영구암 풍광과 비교해 본다.

구암암 - 조 식

동령송위대
불당인배지
남명오노의
료이문산지

동쪽 고개 소나무 크게 자랐고
법당의 사람들은 절을 한다.
남명 나는 늙은이라
묻노니, 산에 영지버섯 있는가.

작가 남명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로서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한시대 최고의 인물이다. 처가 마을의 뒷산을 사랑하여 처가 동네에 와서 산해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그곳이 바로 김해고을 대동면 주중리다.
동쪽 고개나 법당 안의 정경을 한 걸음 물러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등 시에서도 세상 밖 선비의 시선이 느껴진다.

구암암 - 조이추

천고구암승
아금일방지
남명금이원
수복문영지

천고의 아름다운 구암을
내 이제야 한번 찾았다
남명은 이제 멀리 갔으니
누가 다시 영지르 물을까?

작가는 오늘날 김해시 활천동 사람으로 성리학에 뛰어났다. 남명보다 160년 후대의 인물이지만 유학의 거두였던 남명 선생을 존경하였음을 느껴본다.

구암 - 조구령

휴봉책장상구암
특지풍광최영남
봉취설소통조도
석두운단로승암

행심승처녕지권
시우성시불용참
입안성분미해외
삼한종고소기남

지팡이를 벗 삼아 구암에 오르니
특지 풍광이 영남에서 제일이라.
부리 같은 봉우리에 눈 녹자 새의 길 열리고
돌 머리 구름 걷히자 승려의 암자 드러난다.

아름다운 곳 찾아다녔으니 정녕 게으름을 알아
시를 우연히 만들었으니 부끄러워 사용하지 못한다.
눈에 들어오는 비린 기운 바다 밖까지 아득하고
삼한에는 예로부터 기이한 남자 적었구나.

조구령은 김해 지내동 사람이다. 대학을 깊이 연구했고 효심이 지극하였다. 1657년~1719년의 인물로 조이추와 함께 창녕인으로 유림의 존경을 받았다.

구암 - 김남수

첩석쟁탱천북극
홍도호탕지동남
기위우주궁률물
하작허무일불암

만고풍연망국한
천추일월향인참
정관무로의암좌
위석당년백자남

포개진 돌덩이 다투어 북극을 떠받치고
동남으로 큰 물결에 접한 호탕한 땅이라.
이미 우주에 활 모양을 이루었는데
어찌 허무하게 부처위한 암자가 되었는가.
만고의 바람과 안개는 망국의 한인가?
천추의 해와 달은 사람을 향해 부끄러워한다.
길 없는 바위에 기대어 앉아 고요히 살피니
그 시대 벼슬한 사람들이 애석하구나.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