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

옥천봉은사 주지

사)정신건강보육개발원 이사장

 

지금은 열반에 드신 법정스님의 말씀 무소유라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수행자와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기도 하였고 지금 또한 무소유라는 단어는 회자 되고 있다.
소유 무소유는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범주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다. 소유라는 것은 생각이 소유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에 불과 한 것이다. 엄밀히  말을 하자면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그 어떤것도 소유 할 수가 없다. 이 말은 진실로 사실이다.

사람은 살면서 집착이라는 것이 생긴다. 집착은 소유로 가는 과정중에 일어나는 하나의 정신작용이며 삶를 살아가는데 강력한 동기화 동력원이 될 수 있다. 집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기 이전에 갖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집착이 있고 이미 소유한 것에 대한 지속적인 소유를 하기위한 집착으로  나뉠 수 있다. 집착과 소유는 뗄라야 뗄 수 없으며 둘은 한 쌍을 이루며 우리의 삶을 유지 시키는 하나의 정신적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것은 우리를 괴로움으로 몰아넣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게하며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만드려는 생각이라는 괴물의 계략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의 섭리는 둘로 나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토지를 이땅 저땅 하며 나눌수가 없고 하늘도 이하늘 저하늘 하며 나눌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생각으로 나누는 것이고 그 생각으로 내것 네것 이렇게 나누어 약속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욕망과 생각의 차이로 분쟁이 생기니 그것을 문서화 하여 경계를 구분하여 소유권이라는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서로간에 약속일 뿐이다.

엄밀이 얘기 하자면 우주 자연에는 소유격이라는 것은 없다. 다만 공유, 공용만이 있는 것이다. 내 것이라는 것은 존재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소유를 실천한다는 것도 엄밀히 이야기 하면 틀린 말이기도 하다. 삶을 영위 하기위해서는 다양한 살림도구들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러한 살림도구나 다른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거나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편의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그것을 소유와 무소유의 판단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의 편함과 불편함 이것은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소유 했다. 무소유를 실천한다. 라고 하는 것은 한낱 망상이 빚어낸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마음에서 집착과 소유라는 개념이 있으면 마음은 마음의 독을 자꾸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진정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티끌조차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물건을 소유 했다는 것은 실제로 그 물건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의 상(像) 마음속에 맺힌 것을 소유한 것이지 실재 물건을 소유한 것이 아니다. 생각이 가졌다라고 하는 생각만이 있는 것이다. 유생물 무생물 모든 자연은 그 누구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무소유 속에서 살고 있다. 다만 무소유속에서 살고 있는데 소유속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여 괴로움을 초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무소유란 금은보화가 가득 쌓여 있어도 마음이 휘둘리지 않고 가지고 있지만 가졌다라는 집착이 끊어진 상태로 불편함을 편함으로 쓸 수 있을 때, 집착과 생각이라는 괴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무소유의 상태를 회복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정으로 무소유의 상태가 되어 괴로움 없는 편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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