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영 편집국장

 필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이야기다. 선배가 찾아와 책읽기 동아리를 하는데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책을 읽자는데 고맙다 싶어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며칠뒤 약속장소인 대학로의 한 중국집으로 갔더니 나와같은 신입생 4~5명 가량이 앉아있었다. 책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서점에서 파는 보통의 책이 아닌 등사판 인쇄물을 엮어만든 것은 확실하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군부가 철권통치를 하던 시절 운동권이 바이블처럼 학습하던 일종의 운동권 지침서였다. 세번을 가고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책 내용과 다른 주장은 허용되지 않는 특정이념의 학습장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모임은 운동권 후배를 모으고 양성하는 자리였다. 이 모임이 다양한 인문적 의견과 성찰, 토론이 가능한 자리였다면 아마도 계속 갔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모든 운동권이 다 그렇다고 싸잡아 일반화시킬 생각은 없다.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많은 운동권에서 세상을 보는 루틴화된 사고, 다른 견해를 거부하는 편협성을 확인했던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586세대라고  부르는, 현재 정치권의 주축세력으로 성장한 이들은 필자와 달리 운동권에 모든 것을 내던진 인사들이다. 지금도 그들의 말과 정책에서 40년전의 사고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선거 연령이 만18세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학생유권자를 위한 선거교육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민주시민으로서 올바른 권리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아야 한다는 쪽과 교육현장을 정쟁의 장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비판론이 맞서고 있다. 그런 와중에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모의선거 프로젝트 수업이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모의선거 프로젝트수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공약의 내용을 분석하는 문해력, 거짓 공약이나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걸러내는 판단력,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종합 능력 등 제대로 된 참정권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능력은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함께 토론하고, 선거과정을 체험하는 등의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길러지고 내면화된다는 점에서 모의선거를 통한 청소년의 참정권 교육은 현재의 유권자에게도, 미래의 유권자에게도 매우 필요한 교육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본질의 핵심은 누가,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교육하는냐 하는데 있다. 특정이념에 편향된 사람들이 선거교육에 나선다면 균형잡힌 올바른 교육이 되기는 어렵다.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학생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미칠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교육주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섯불이 모의선거프로젝틀 짜서는 안될 일이다. 선거교육을 주창하는 세력이 진보교육감이 있는 교육청과 전교조, 노동계임을 감안하면 이런 우려가 우려만일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 주역이 될 학생들을 특정정치세력의 잠재적 우군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을 수용해야만 제대로된 선거교육의 방향이 나올 수 있다. 선관위의 판단을 50만 교사를 정치편향교육을 하는 교사로 매도하고 선거교육과 선거운동을 구분하지 못한 우매함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논란만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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