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계속>>>
 

 (가) 요사이 남명으로부터 온 이의 말에 의하면, 호남 기사문(기대승을 말함)이 일찍이 황과 더불어 사단칠정을 논한 서찰을 주고받은 것이 남명의 극히 옳지 않다고 하며, 심지어 기세도명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약석이며, 이 이름은 매우 두려운 것입니다.

 (나) 마침 남명은 조건중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르기를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정차조차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이야기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남에게서 상처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칩니다. 아마도 이것은 선생같은 장로께서 꾸짖어 그만두게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마음 속으로 학문을 원하여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에는 어찌 남의 이름을 훔치고 사람을 속일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뜻을 세우는 데 독실하지 못한 일이 있으니 이름을 훔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겠습니다. 이 때문에 남명의 말은 참으로 우리들에게 약석인 된다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더욱 분발하여 자신의 몸을 돌이켜 실천함으로써 날마다 연구하고 궁리하여 힘쓴다면 지식과 행실이 함께 진보하고 말과 행동이 서로 같아져서 성현에게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이며 고세지사의 꾸지람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는 퇴계가 이정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고, (나)는 정유일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이같이 남명과 퇴계 서로 주고 받은 편지를 통해 두 사람의 학문과 도량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으며 당시 유자들의 학문적 성향과 삶의 면모 역시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의 주자학은 중국과는 달리 그 연구가 깊어지면서 사단칠정설 및 인심도심론과 같은 인간의 심성론이 극도로 발달하게 된다. 퇴계는 바로 이같은 연구의 선두에 서 있었던 것이다. 남명은 여기에 대하여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퇴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성리논쟁을 냉혹히 비판하였던 것이다. 남명은 이와 달리 성리학을 중심에 두면서도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문, 노자와 장자의 학문 및 천문, 지리, 병법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섭렵하였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