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숙 문학박사 창원대 외래교수

이홍숙 문학박사/창원대 외래교수

 지금은 부산시에 편입되어 부산지역이 된 곳 중에 ‘범방’이라는 마을이 있다. 부산 경남 경마공원 속에 있는 이 마을과 근처에는 몇 가지  문화재가 전해 오고 있다. 미음리 석탑과 범방 패총 그리고 당산나무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경마공원이 들어서자 마을은 집단 이주를 했고 나머지 근처 마을은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석탑과 패총유적지 당산나무는 그대로 보존이 되어 오고 있다. 마을이 모두 이주하거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존되어서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증명하고 있어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사라진 무형의 문화들이다. 탑을 둘러싸고 전해오던 마을의 문화와 당산나무에 얽힌 문화적 형태는 사라지거나 변질되었다. 당산나무와 관련된 문화는 당제 또는 당산제이다. 의례로서 당제 또는 당산제는 정월 대보름 의례가 거행되던 곳이다. 정월대보름이 시작되는 시간대인 정월 열나흘을 넘기는 캄캄한 밤에 제를 올리고 보름을 맞아들였던 곳이다. 마을에서는 이 제의를 시작으로 귀밝이술을 먹고 부름을 깨고 오곡밥을 먹고 복쌈을 먹으며 묵은 질서를 보내고 새 질서를 맞이하는 의례를 거행했던 것이다. 이른바 당산나무제는 보름의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례는 지신밟기와 줄다리기에 이어 달을 맞이하고 돌려보내는 달집 태우기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토록 성대했던 의례의 시작점인 당산나무의 원형은 무엇인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수록되어 있는 단군신화를 보면 ‘신단수(神檀樹)’가 등장한다. 여자로 변한 웅녀가 ‘신단수’아래서 잉태하기를 기원한다. 이후 웅녀는 남성으로 거짓 변한 환웅과 결합하여 단군(檀君)을 낳는다. 이는 신단수가 웅녀와 환웅을 이어서 단군이라는 왕을 탄생케 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곳에서 잉태된 단군은 나라를 건설한다. 따라서 단군이 잉태된 곳의 신단수는 웅녀라는 질서와 환웅이라는 질서를 결합시키는 존재이며 신단수가 있는 곳은 새질서가 창조되는 ‘우주의 중심’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고대인들은 이 우주의 중심에서의 제의를 통해서 새질서를 맞이했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당제 또는 당산제에 남아 있는 것이다.
 
신단수(神檀樹)는 우주목(宇宙木-cosmos tree)다.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크리스마스트리나 석가가 깨달은 보리수는 신화시대의 우주목을 계승한 것들이다. 전해오는 이야기 중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 속에서 오누이가 가짜 어머니 호랑이에게 쫓기다 타고 올라간 나무도 ‘지하대적(地下大賊) 퇴치설화’속의 한량이 지하로 내려가 떨어졌던 나무도 모두 우주목의 기능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감으로써 전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한다. 오누이는 해와 달로 변모되었고 한량은 대적을 물리치고 부잣집 딸을 구해 지상으로 돌아와서 그 딸과 결혼한다.
 
김해의 토박이 어르신들을 만나 보면 당제나 동제 등의 기억들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당산나무나 당집 등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의 기능적 의미를 가지고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대표적으로 국립민속박물관 앞에 있었던 당산나무, 봉황대에 있는 당산나무는 흔적이 남아 있지만 원형적 의미와 그곳에서 존재했던 문화는 찾을 수 없다. 일부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서 의미를 잃은 채 떠돌고 있을 뿐이다. 문화재로 복원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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