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이 돌아왔다<7>

칠산 묘법연화서 법지

  서유기의 첫 편은 심원귀정 육적무종(心猿歸正 六賊無)의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손오공을 심원(心猿)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직역하면 ‘마음 원숭이’입니다. 단순한 원숭이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불리는 원숭이입니다. 처음에는 분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패악 짓을 하다가 나중에는 성불하여 지혜를 갖춘 ‘마음 원숭이’가 됩니다. 지혜가 드러나기 전의 마음이란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은 원숭이였지만 마음을 바른 정도로 세워 귀의하니까 여섯 도둑의 자취가 사라져버린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마음을 바로 세운다는 것은 초발심이며 이는 바로 정각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의상대사의 화엄경 법성게에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 便正覺)이란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는 처음 발심한 원인(因)속에 깨달음의 결과(果)가 함장이 되어 있으므로 초발심이 곧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깨달음은 존재의 궁극적인 실상을 알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비롯되지만, 대개는 어떤 알 수 없는 내면의 부름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부름은 어느 정도의 의식이 성숙되어야만 일어납니다. 불가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절인연이 무르익어야 깨달음을 향한 수행이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상적인 인연과의 만남을 통해 의식이 성숙됩니다.

초발심입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 깨달음의 여정이 우리의 삶 속에 자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원한다면, 우리 마음속에 깨달음이 일어날 만한 궁극에 대한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문이 결국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런 초발심이 정도와 접목되고, 강한 수행의 의지로 온 마음을 모으게 되면, 그 결과 깨달음이 피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수행의 정도는 궁극에 대한 알고 싶은 크기에 따라 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손오공도 깨달음을 위해 의문도 품기도 하고 스승을 찾아 수행도 행합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신통을 얻게 됩니다.
 
본디 손오공은 부모 없이 태어난 돌원숭이 입니다. 태어난 곳은 동승신주(東勝神州) 바다 저편에 있는 오래국(傲來國)의 화과산(花果山)으로 이곳은 천지개벽 이래의 정수가 모인 곳인데, 이곳이 손오공의 고향입니다. 그 산의 꼭대기에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그 둘레가 세(3)길 여섯(6)자 다섯(5)치나 되고, 높이는 두(2)길 네(4)자나 되는 바위입니다. 그 둘레와 높이의 의미는 1년의 날수와 24절기를 뜻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운행의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천지개벽 이래의 정기를 모아 드디어 손오공이 탄생을 합니다.
 
 현장이 쓴 대당서역기로 돌아가 보면, 현장이 인도의 나란다 대학으로 가서 유식을 완파하고 16년간 공부와 토론으로 얻은 결론은 대승불교의 공사상을 보완해 줄 유식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대승불교 교리의 대부분은 공사상이었습니다. 그 핵심은 만물은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있는 것이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은 곧 있는 것이라는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현상계의 자연현상을 놓고 공을 다루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용수가 주장했던 것도 이런 입장의 공입니다. 세상은 돌고 돌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죽으면 흙이 되고, 물이 되며, 그 흙과 물은 곡식이 되고, 곡식을 먹은 남자와 여자에 의해 다시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주장입니다. 즉, 나란 내가 아니며, 내가 아닌 흙과 물이 곧 나인 것으로, 결국 눈에 보이는 사물의 본질이란 없는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현장은 우주나 자연보다는 인간의 마음에서 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장의 유식사상은 본질이 없다는 공사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다고 말하는 공사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은 모두 머릿속에서 나온 것인데, 밧줄을 보고 뱀이라 생각하여 놀라는 것은 마음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머릿속에 편견과 욕망이 많을수록 진정한 실체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 제법실상의 실체는 존재합니다.

밧줄을 밧줄이라고 보았을 때 진정한 제법실상의 실체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실체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결국 현장이 주장한 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지만 우리들 중생은 업에 가려진 눈으로 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없어서 그것이 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장의 주장과 같이 우주의 모든 현상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철학을 만법유식이라고 칭합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우주의 정기를 받아 마음으로 태어난 원숭이가 된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음을 강조한 현장의 만법유식을 이어받은 자은법사는 스승의 철학을 <법상종>이라는 종파철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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