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불우에서 부른 노래

김종간 향토사학자

제6장 불우에서 부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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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은 유였으나 향으로 고쳤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서 문종의 이름이 같은 자였으므로 다시 초명인 유로 부르게 되었다. 1260년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이 되고 여러 관직을 거쳤다. 원나라를 자주 왕래하며 주자학을 배워 우리나라 최초로 주자학을 보급하였다.
그가 죽자 1318년 충숙왕은 그 훌륭함을 기리고자 궁에 있는 원나라 화공에게 명하여 화상을 그리게 하였다. 현재 국보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는 그의 화상은 이것을 묘사한 것을 조선 명조때 다시 고쳐 그린 것이다. 고려시대 최고의 명신이자 대학자인 안 유가 김해의 감로사를 찾아 시를 남겼음은 불교의 나라 고려시대 감로사의 명성을 느끼게 한다.

감로사 - 이견간

걸래선동득관평
각희연방거군성
삼면반공개악색
삼면반공개악색
일금허처시강성

전촌표묘어등암
별원소조안탑명
자니미기백의생

서둘러 선동에 온 것은 너그럽고 편안함을 얻고자
문득 연방이 그리워 군성을 떠났네.
삼면과 반쪽 하늘모두 산 빛이요
마음 허전한 한 곳엔 강물 소리다.

앞 마을 아득히 고기잡이 등불 어둡고
별원 호젓한데 안탑이 밝다.
임금을 생각하여 부지런히 축수하지 않으리요
높은 관직 받은 흰 옷 입은 서생이다.

작가 기견간은 고려 고종 46년~충숙왕 17년의 인물로 뛰어난 정치가요 시인이었다. 고려의 충렬왕, 충선왕, 충숙오아 등 세 임금을 모신 청치가로서 통헌대부, 민부전서, 홍문관사를 지냈으며 특히 충숙왕 4년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상주의 객관에 머물면서 두견새 소리를 듣고 지은 시로 중국에 이름을 날렸다.

객사 깊은 밤 등불만 가물가물
초라한 내 모습 중보다 담박하구나.
두견새 울어대어
간밤에 저 산꽃 얼마나 졌을까.

이 시로 인해서 이견간의 호인 산화가 중국에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고려의 큰 인물이 감로사를 찾아 노래를 남겼으니 감로사지에서 만나는 차나무와 멀지 않은 곳에서 남해로 흐르는 낙동강이 더욱 아름답다. 시인 산화가 느낀 것처럼 감로사지에서 만나는 풍광은 푸른 산빛에 하늘은 반쪽이라 더욱 아름답다.

충렬왕의 장군수 금강사

『김해읍지』의 기록

금강사는 부의 북쪽 대사리에 있다. 고려 충렬왕이 합포에 왔을 때 여기에 와서 유람하였다. 불훼루가 있다.
영의정 하륜이 불훼루기에 말하기를 "김해는 옛날 가락가야였다. 가락은 신라와 함께 일어났고, 수로의 탄생은 참으로 기이하고 남긴 풍속이 순박하다. 올라 임하여 바라보면 아름다운 경치가 남방에서 으뜸이며 그 중에서도 금강사의 소헌이 제일이다. 사에 산다수가 있어 그늘이 뜰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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