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영 편집국장

  우리는 오랫동안 동서갈등에 허덕인 적이 있다. 동서갈등은 우리의 고질병폐였다. 그러나 동서갈등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일부 정치인을 빼고는 하루빨리 척결해야할 과제라는 인식은 모두가 가졌다.

 그 덕인지 이제 동서갈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만큼 사정이 좋아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이 빈자리를 보수-진보 갈등이 꿰찼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현 정권에 이르러서는 보수진보 갈등이 가히 망국의 수준이다. 진영논리에 갖힌 그들은 학습을 통해 그들만의 진영논리를 강화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는데만 열중이다. 보수나 진보 진영이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상대를 향한 적개심에 가득찬 저주가 난무한다.

 자제와 균형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설 자리가 없다. 나오면 뭇매를 가한다.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살기가 가득하다. 우리는 조국사태를 거치면서 생생히 목격했다. 동서갈등이 동서 불균형 개발과 소외, 광주사태가 빚어낸 외적요인의 결과물이라면 보수 진보갈등은 이념적 양상이 짙다는 점에서 훨씬 위험하다.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볼 수 있다. 민주사회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다. 다른 견해 다른 세계관이 경쟁적 공존을 하며 합의와 타협으로 유지되는 사회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판박이 생각을 하고 있다. 내편, 네편이라는 진영논리가 학습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똑같이 만들고 있다. 대화는 애초에 불가능한 철옹성이 구축되는 양상이다. 진보는 보수를 역사의식도 없는 부패한 기득권세력이자 청산대상으로 간주한다, 보수는 진보를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포퓰리즘에 능한 무능한 집단으로 간주한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갈라진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열상이 심각하다. 동서갈등은 그래도 적어도 가족간에는 볼 수 없었으나 진영갈등은 가족도 갈라놓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를 지지하는 부모와 진보를 지지하는 자녀들이 싸웠다는 말도 많았다. 심지어 엄마를 보지 않겠다는 가족도 있었다.

심각한 것은 책임있는 어느 누구도 이 갈등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낀다. 대통령까지 이 갈등을 치유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검찰개혁 등 최근 쟁점법안의 처리과정에서 우리는 여야는 물론 갈라진 국민의 분열상을 확인하고도 남았다.

 천정부지로 솟은 갈등 비용은 우리의 미래에 암초로 작용할 것은 불문가지다. 일부 양심적 지식인들이 이런 문제를 질타라도 하면 변절자로 낙인찍힌다. 언로가 막히고 반대의 목소리는 감히 하지 못할 공포감까지 업습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술자리에서 마음놓고 술을 마시지 못할 정도다. 언제부턴가 친구사이에서도 술자리에서 정치이야기는 금기시 됐다. 말 잘못하면 잡혀가던 군사독재시절이 연상된다.

 이토록 찢어질 정도로 이념이 중요한지 되물어 봐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내가 지향하는 세상이 정의고 진리라는 아집은 과연 옳은 것인가 반성해야 한다. 세상은 바른 생각만 갖고 있는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온갖 군상의 인간들의 아귀다툼 속에서 세상은 물처럼 흘러간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면 혼란과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원인은 집권욕에서 비롯된다. 현 정권은 장기집권의 토대를 집권기간내에 구축하려하고 야당은 정권탈환에 목을 멘다. 상대가 집권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지기라도 하듯 기겁을 한다.

 이러다보니 반대진영을 설득하고 껴안려는 노력보다 자기진영을 확대 강화하려는 쪽에만 신경을 쓴다. 갈등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상대를 향한 시선이 날카로울수록 세상은 메마를 수밖에 없다. 나는 보수 진보갈등의 동참자가 되지 않겠다는 미투 운동이라고 해야할 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운동에 불을 지필 양심적 지식인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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