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 /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489p / 2만 2천 원


 

TV사극이나 영화에서 재현한 과거를 치르는 장면을 보면 선비들이 큰 종이 위에 붓글씨로 답을 써 내려간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논술시험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비교하기에는 과거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을 것이다. 달달 외워서 쓰는 것이 아니었을 테고, 문장은 물론이며, 글씨도 잘 써야 하지 않았겠는가.

 ‘책문’은 말 그대로 대책을 묻고 답하는 것이다. ‘책문’은 조선시대 고급공무원 선발 시험인 대과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최종합격자 33명의 등수를 정하는 시험이다. 책문에서 떨어지는 선비는 더 이상 없었다. 어쨌든 명실공히 당대 제일의 인재를 선발하는 자리였다. 대과의 최종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임금은 당시 시대의 어려움을 책문의 문제로 내고 그 대책을 들었다. 책문은 단순히 입신양명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국가의 비전에 대해 왕과 인재들이 나눈 열정의 대화였던 셈이다.

 이 책의 저자 김태완 씨는 책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책문은 시대의 물음이다. 시대가 출제한 시험이다. 곧 당대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에 빗대어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대해 응시자가 자기의 역사의식, 정치철학, 인문교양을 총 망라하여 해법을 제출한다. 그리하여 책문이란 권력을 갖고 권력을 행사할 사람의 권력의 대한 이념과 철학, 권력 운용의 역량과 비전을 묻는 시험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관료로 출사하기 전에 자기가 처한 시대와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책문을 쓰면서 자신을 치열하게 점검하고 성찰해야 했던 것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책문 가운데에서 오늘날 우리가 읽어도 의미가 있는 글을 소개하고 있다. 5명의 왕 세종, 중종, 명종, 선조, 광해군의 책문에 대한 16명의 선비들의 대책을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인재를 등용시킬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정쟁을 멈출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외교책에서 정벌책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화친을 해야 하는가, 외교관의 자질은 어떤 것인가,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이다. 왕이 아니라 시대가 묻는 엄정한 질문이었고 그 당대에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에 대한 질문이었으며, 그 질문에 대한 대책이다.

 책 속의 책문들은 조선시대의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새로운 대책을 묻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 본질적 문제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과의 마지막 관문 앞에 선 응시자들은 시대의 질문 앞에서, 그 시대에 걸맞은 답을 내놓아야 했다. 그동안 닦아온 학문과, 자신의 모든 지혜를 짜내야 했다. 그렇게 나온 답 역시 조선시대의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쩌면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에도 우리가 아직도 그 대책을 제대로 실현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책문>을 읽으며 오늘의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비전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의미이다.
 이 시대의 책문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을까. 피할 수 없는 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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