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

 즉, 경상도 43개 고을 가운데 울산·풍기·고령·거창·사천·삼가·의령·안음·김해·창원 등의 10개 고을들은 강함·사나움·무예·싸움 등을 숭상하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 가운데 울산과 풍기를 제외한 나머지 8개 고을은 모두 옛날의 가야문화권에 속하는 곳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적 특징은 1천년의 세월동안 연면히 계승되어 온 고대 가야인의 기질이 그대로 반연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져 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역사적으로 확인되듯이 이 지역의 주민들은 다른 어떠한 지역보다도 불의를 미워하고 이것에 항거하는 정신, 대의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정신을 강하게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 화랑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야문화 내지 가야정신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화랑세기》에서는 32명의 역대 풍월주 가운데 화랑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도의 중심의 화랑도를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서 8세 풍월주 문노와 15세 풍월주 김유신을 꼽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크게 두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둘 다 가야문화와 정신을 이은 가야의 후예라고 하는 점이다.

 문노의 어머니 문화공주는 지금의 경북 고령 지방을 중심으로 합천과 가야산 일대에 근거를 두고 있었던 대가야왕의 딸이었다. 성장하여서는 신라 귀족인 비조부공에게 시집을 와서 문노를 낳았는데 문노는 평소 가야왕의 외손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였다. 또한 김유신은 법흥왕 19년(532년) 신라에 귀부해 온, 지금의 김해지방에 근거지를 두었던 금관가야왕 구해의 증손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가야 지배층의 외손 내지 후손으로서 가야정신을 온전히 계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들이다.

 둘째, 둘 다 검의 달인이면서 동시에 의기를 좋아하고 협기가 많았으며 의를 매우 숭상하였던 인물들이었다. 이 둘은 비록 망국의 후예였지만 풍월주가 됨으로써 그들이 온전히 계승하였던 가야문화와 정신이 화랑도 형성에 크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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