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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전무영 열사는 살아 있다 (하)김정일 여행작가/중앙대 4·19혁명 기념사업회장/ 4·18민주의거 기념사업회상임 고문
김정일 여행작가/중앙대 4·19혁명 기념사업회장/ 4·18민주의거 기념사업회상임 고문.

 범인으로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 중에 오랫동안 여운에 남은 시 한편을 소개하기로 한다.

햇살 따스한 봄날이면
총각 죽임 당했던 무덤 곁에
박새 한 마리 찾아와서
자유 민주 정의 외치며
찌찌르르
박새는 세 번씩 머리를 찧어서 울었다

한바탕 소나기 뿌려놓고
햇살이 달아오르면
처녀죽음 했던 계곡에
박새 한 마리 엎드려서
진실 사랑 흠모 우짖으며
찌찌르르
박새는 세 번씩 머리를 좌우로 저으며 울었다

간혹 네 번 울 때는
슬픔이 흘러서 이어진 흐느낌
못 다한 그 꿈이 얼마나 컸기에
이루지 못한 사랑이 얼마나 쌓였기에
떠나지 못하고 붙박이가 되었나

전원일 詩 '박새'


 현장을 돌아보면서 전 열사의 영향이 엄청났음을 알 수 있었다. 열사의 고향 한림면 장방리 진말부락 인근에는, 고 노무현대통령 생가 봉하마을이 있다. 장기표(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민족운동가 고 김병곤(서울대 상대 재적)이 반경 2Km 안에 있었다. 심지어 장기표씨와 김병곤씨는 전 열사의 초등학교 후배였다. 이들은 모두 전 열사의 민주투사 정신에 영향을 받아 인권대통령이 되고 민주운동가가 됐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민주주의 혼을 심어준 전 열사이지만 정녕 열사의 고향인 김해에선 전남 송규석 열사처럼 잊혀진 인물이 되어 있었다.

 정부의 지원도 없이 그의 친족들이 낸 회비로 추모행사를 지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누구를 위해서 흘린 젊은 피였던가. 국가에서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 열사의 유족 전석호씨를 비롯 사촌형제들이 김해시청을 방문하였다. 열사묘역과 묘비 보수공사와 입간판을 설치해줄 것을 협조요청을 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74조의 2(현충시설의 지정)' 및 '현충시설의 지정시설 지정·관리 등에 관한규정 제3조(현충시설의 범위)에 해당되지 않아 모두 거절되고 말았다.

 결국 열사 누나와 사촌형제들이 기금을 마련해서 새로운 묘비와 묘역 정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묘역 둘레에 설치해야할 둘레석도 없었다. 민주영령에 대한 예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의 절규가 '티글 만한 물방울이 대해를 이루듯이 국민들의 뜻을 모아 국가보훈처가 4·19혁명 60주년을 맞아 앞장서 관계 범령의 범위를 확대시켜 예우를 해줘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민주사회를 사는  4·19혁명에 참여한 산자들의 도리이자 책무라 생각한다.

김해일보  gimhae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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