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그렇다면 남명의 의사상과 화랑의 의정신이 연결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 언뜻 보면 이 둘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우선, 남명이 살았던 조선조와 도의 위주의 화랑도가 존재하였던 삼국통일기(540년~680년)의 신라사회는 시대적으로 약 1,000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에는 화랑도가 이 땅에서 온전하게 계승되어 왔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현재로 는 미약하다. 다음으로, 화랑도 발생의 문화권이 신라문화권인데 비해, 남명정신을 배태시킨 문화권은 가야문화권이었다. 신라문화권은 그 지역이 조선조의 경상좌도, 일명 강좌문화권으로서 주로 지금의 경북지방에 해당된다면 가야문화권은 그 지역이 조선조의 경상우도, 일명 강우문화권으로서 주로 지금의 경남지방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두 문화권은 분명한 차이점을 갖는다. 이렇게 본다면 남명의 사상은 신라의 화랑도 정신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가야문화권에서 배태된 가야정신 신라 화랑도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남명의 정신과 성격 속에는 이러한 가야적인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남명의 사상과 화랑도 정신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가야정신을 매개로 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고 하겠다.

(3) 가야정신이 남명의 정신과 성격 형성에 미친 영향
 이처럼 남명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가야문화권이 지녔던 가야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화랑세기》에 나타나는 가야문화권의 특징은 한마디로 활발발한 야성의 문화, 무의 문화, 검의 문화, 의를 숭상하는 기의 문화로 요약되며 이 속에는 북방 기마민족의 특성이 잘 반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남명의 나이 30세 되던 해인 조선조 중종25년 (1530년)에 증보,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경상도 각 지역별 풍속관계 기록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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