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炭)

 

탄(炭) / 심봉순 지음 / 북인 / 256p / 1만 3천 원


 

 김해에서 보낸 초등학교 시절 겨울 풍경 중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겨울이 되면 교실 안에 난로가 설치되고, 매일 아침 당번이 작게 뭉쳐진 조개탄을 양동이 가득 배급받아 왔다. 난로에 불을 피워서 배급받아 온 한 양동이의 조개탄을 아껴 가며 하루 종일 썼다. 그 당시의 겨울은 그렇게 추웠다. 우리는 난로 위에 양은도시락을 얹어서 데웠다. 담임선생님이 난로 위에서 오전 내내 커다란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가 점심시간마다 우리의 도시락 뚜껑 위에 더운 물을 나누어 주던 기억은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그 때는 너무 어려서 그 탄을 캐는 광부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심봉순 작가의 장편소설 <탄>을 보면서 비로소 알았다. 어두운 갱도에서 탄을 캐면서 살았던 광부들의 삶을 그린 소설에서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절, 가장 깊은 땅 속에서 일했던 광부들의 애환을 이제야 만나봤다.

 심봉순 작가는 1964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났다. 친구들이 대부분 광부의 아들딸이었기에  탄광촌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소설 속에는 작가가 보았던 일,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탄광촌 사람들의 사연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소설 <탄>은 소설이면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다.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철이 없어 잘 몰랐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광부 가족의 삶이 어떤지 알았다. 어느 날 탄광촌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퇴근하는 친구 아버지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처음 봤다. 얼굴까지 새까매진 모습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개인광업소는 샤워시설도 없는 곳이 많아서 광부들은 집에 가서야 씻을 수 있었다. 작가는 친구 엄마들이 작업복을 빨 때 검은 물이 끝없이 나왔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탄광촌에는 탄가루가 구석구석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냇물조차 검은 그림을 그렸다. 탄광촌의 냇물은 검은 물이었으니까. 탄광촌으로 첫 발령받아 온 초임교사들은 그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창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수업시간 도중에 갱도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울면서 집으로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갱도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도 월급을 많이 주니까, 삶의 마지막 까지 내몰린 아버지들이 갱도 안에서 탄을 캐는 일을 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내몰린 일, 그래서 탄을 캐던 갱도의 끝을 막장이라고 불렀다. 삶의 마지막까지 내몰린 가장은 두려움과 공포를 무릅쓰고 컴컴한 갱도 속으로 매일 걸어 들어갔다. 갱도가 무너져 남편이 사망하자 아내가 울부짓는 장면은 눈물이 절로 흐른다. 여인은 "그렇게 갱도에 들어가길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매일 아침 도시락까지 싸서 보냈다"면서 가슴을 쳤다.

 가족의 생계를 온몸에 짊어지고 어두운 막장을 향해 걸어 들어갔던 광부들의 삶과 절박한 마음. 광부의 아내와 아들 딸의 삶. 이 소설을 읽으며 광부의 삶을, 아버지의 생애를 생각한다. ‘이래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탄광촌의 사연을 오래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소설로 쓴 작가는 광부의 딸은 아니었지만 ‘탄’을 쓰면서 이 땅 모든 광부의 딸이 됐다. 그는 ‘작가의 말’에  ‘태백의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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