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둘째는 그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어떠한 대상에도 마음을 두지 말고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곧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수렴함이다. 셋째는 항상 나의 의식을 샛별처럼 초롱초롱하게 유지하는 것이니, 이것은 의식을 각성시킴이다. 넷째는 한 가지 일에 전념하는 것이니, 이것은 정신을 집중함이다. 이 네 가지는 남명이 보는 경의 내용일 뿐 아니라, 경의 순서이기도 하다.

 즉, 몸의 수렴 다음에 마음이 수렴되고, 마음의 수렴 다음에 의식이 각성되며, 의식이 각성된 다음에야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을 체용 내지 동정으로 나누면, 경의 본체 내지 정시의 경은 몸의 수렴-마음의 수렴을 거쳐서 의식의 각성으로 용약되며, 경의 효용 내지 동시의 경은 정신집중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정신을 집중함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궁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경도에서는 ‘정신집중의 요체는 격물치지에 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격물치지란 곧 궁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남명의 경우 정신집중이란 단순히 궁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독서와 사색을 극진히 하여 의리를 명확히 인식한 후에 이 인식된 의리에 바탕하여 의를 실천하는 행의 단계까지를 포괄하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의 수렴-마음의 수렴 단계를 거쳐야 하겠지만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정좌수행이다. 정좌수행을 하면 몸의 수렴-마음의 수렴은 물론이고 의식의 각성까지가 한번에 가능해진다. 그러면서 정력이 배양된다. 정좌수행 이후에 정신집중이 잘 되는 것은 정좌수행을 통해서 의식이 각성되면서 정력이 배양되었기 때문이다. 정력이란 우리의 의식을 고요하고 깔끔하고 또렷하게 (또는 훤칠하고 말끔하게) 하여 어떤 대상에 대하여 정신을 집중시킬수 있는 힘을 가리킨다. 남명이 정좌를 즐겨 수행하였음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다. 우암 송시열이 지은 남명의 신도비명에도 정좌에 대한 언급이 있다. “깊은 방안에 거처할 때에도 어깨와 등이 꼿꼿하였으니 새벽 일찍 일어나 ‘정좌’하여 묵묵히 살피고 정밀히 사색하였으니 고요하기가 마치 사람 없는 듯 하였다.” 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남명이 평소에 충분한 정력을 배양하고  있었음은 그의 제자이자 외손서였던 동강 김우옹이 쓴 행장에서 잘 드러난다. 동강은 남명이 병석에 누운 지 한 달이 넘어 병세가 매우 위독했는데도 조금도 정신이 어지럽지 않고 학자와 더불어 이야기하면서 평소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확연히 어지럽지 아니함이 이와 같았으니 평소의 공부와 ‘정력의 견고함’이 다른 사람보다 크게 뛰어나 우뚝히 미칠 수 없음을 볼 수 있다.” 라고 하였다. 남명은 이처럼 정좌수행을 통화여 배양된 정력을 바탕으로 궁리를 함으로써 의리를 명백하게 인식하고, 나아가 의를 과감하게 실천함으로써 의로운 기상인 의기 내지 호연지기를 배양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의 기질적인 특징으로 흔히 거론되는 ‘우뚝 선 천길 절벽과 같은 기개’, ‘높고 큰 산과 같은 위엄 있는 자태’, ‘가을의 찬 서리와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같은 기상’ 등은 이처럼 평소 지속적으로 실행해 온 ‘정좌수행에 의거한 의식의 각성, 정력 배양→행의를 위한 궁리→행의→의기 혹은 호연지기의 배양’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3) 남명의 선진유가적인 경의관념

 앞에서 소개한 《주역》 곤괘 문언전의 “군자는 경으로써 그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써 그 외면을 방정하게 한다. 경의가 확립되어야 덕이 외롭지 않게 된다.” 라는 구절에서 보면 경과 의는 대등한 비중을 갖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의 경은 의식의 각성과 정신집중을 가리키는 성리학적인 ‘경’ 고정관념이라기 보다는 의식의 각성만을 가리키는 개념에 가깝다. 따라서 생각이 싹트기 이전인 정시의 실천덕목이라고 하겠다. 이에 비해 의는 정신집중의 대상으로서 생각이 시작된 이후인 동시의 실천덕목이라고 볼수 있다. 이처럼 경과 의는 본래 각각 내와 정, 외와 동을 위한 실천덕목으로 그 영역이 구분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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