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궁리와 행의를 똑같은 비중으로 중시할 수 없으므로 이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견해상이 차이가 생겨나게 된다. 먼저 궁리를 행의보다 더 중시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궁리가 제대로 되어야만 올바른 행위가 가능하다고 보므로 행의 이전의 궁리에 치중하게 되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행의를 경시하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거경궁리(의식의 각성을 바탕으로 의리를 탐구함)’로 요약된다. 조선조 성리학자 중 퇴계 계열의 주리론자들이 주로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이들은 우주의 본체와 인간 심성에 관한 제반 문제를 이기론적으로 해명하는 문제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그 학문경향이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며 이론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행의를 궁리보다 더 중시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궁리란 해의를 위해서 필요할 뿐이라고 보므로 행의를 더 중시하게 되고, 따라서 행의에 불필요한 궁리는 지양하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경의’ 또는 ‘주경행의’로 요약된다. 조선조 성리학자 중 남명을 선두로 하는 남명학파가 이러한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한다. 이들은 이론의 탐구보다 실천에 무게를 둔다. 따라서 학문 경향이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지향적이다. 물론, 거경궁리든 경의든 간에 궁리와 행의 이전에 가장 강조되는 것은 의식의 각성에 해당하는 거경이 될 것이다.

 

 (2) 경의의 함의

 여기서 경의가 거경궁리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거경궁리에서의 궁리란 이것이 행의를 위한 전제조건이긴 해도 궁리에 행의의 의미가 들어있지는 않다. 따라서 거경궁리라고 하면 행의보다는 궁리 자체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의에서의 의에는 궁리의 의미까지도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경의란 엄밀히 말한다면 주경·궁리·행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때의 ‘궁리’가 거경궁리에서의 궁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주의 본체와 인간의 심성에 관한 탐구를 통하여 새롭고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하려는 궁리가 아니라, 이미 선현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 놓은 바 있는 의리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한 궁리라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궁리는 다음 단계의 행의와 연결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행의 속에 궁리가 포함되는 것은 성리학에서 “(이미 밝혀진) 천리 내지 의리를 쫓아서 행하는 것이 의다”라고 하거나 “의리로써 일을 해나가는 것이 의다”라고 하는 데서도 분명해진다.

 남명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실천적인 행의는 도외시한 채 이론 탐구에만 과도하게 관심을 쏟는 당시의 거경궁리 위주의 학문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것은 곧 퇴계학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였다. 남명이 퇴계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최근의 학자들이 손으로 물 뿌리고 빗자루로 쓰는 절차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천리를 논하면서 이름을 도둑질하여 사람들을 속이고자 하는” 풍조를 나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여기서 남명의 경의란 “거경궁리에 그치지 말고 의의 실천인 행의까지 나아가자. 그리고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이론 탐구에 치중하는 궁리를 지양하고 궁리의 목표를 반드시 행의에 두자.”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궁리를 중시한 퇴계가 많은 저술을 남긴데 비하여 행의를 중시한 남명은 “정자와 주자 이후 저술은 필요하지 않다.”라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저술활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3) 경의 구체적인 내용과 정좌수행

 남명의 성리학적인 경의관념에서는 경이라는 수양덕목을 강조하면서 이 연장선상에서 의를 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경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게 된다. 즉, 경을 체와 용으로 나누고 의를 경의 용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려는 입장인 것이다. 이것은 경이 없다면 의가 있을 수 없다고 할만큼 경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을 가리킨다.

 남명의 《학기유편》에는 모두 24개의 학기도가 제시되는데, 이 가운데 제 17도가 ‘경도’로서 이것은 남명이 스스로 지어서 그린 17개의 학기도 가운데 하나이다. 이제 이 경도를 중심으로 하여 남명의 성리학적인 경의관념을 살펴보기로 하자. 경도에서 남명은 경을 네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의관을 가지런히 하고 겉으로는 드러나는 위의를 엄숙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곧 몸을 거두어 들여서 수렴함을 말한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