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편집국장

허균 편집국장.

 10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다. 당시 한 방송사에서 방영됐던 토요일 오락 프로그램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국민 MC로 아직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재석이 사회를 봤고 당대 유명 연예인들은 빠짐없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의 정확한 제목은 가물가물하지만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한 장면 아니었는가 싶다.

 대충 내용은 이러했다. 유명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해 개인, 혹은 팀으로 게임을 하다,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시기가 되면 출연자 중 가장 부진했던 한 사람을 콕 찍어내 제외했다. 필자로선 처음 접하는 서바이벌식 예능이었다. 이 프로그램 진행 방식이 진화해 '나는 가수다'나 '슈퍼스타K', '프로듀스 101' 등 무수한 서바이벌 예능을 양성했으니 당시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 프로그램 말미, 최후의 1인을 뽑기 위해 4명의 출연진이 남겨졌다. 4강에는 결국 최후의 1인으로 선정됐던 유승준과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 박경림, 영화배우로 더 유명한 김범수, R&B 가수로 인기를 끌던 환희가 포함됐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유승준과 박경림, 지금이야 촌스럽기 그지없지만 '스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던 영화배우 김범수의 4강 합류는 당연시됐다. 다만 R&B 가수 환희의 합류는 조금 의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승준의 4강 합류는 크게 이목을 끌지 못했고 그가 우승을 차지할 때도 당연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케케묵은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하면 아직까지 입국을 두고 논란이 뜨거운 '유승준'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짧은 머리에 근육질 몸매, 강인한 인상, 현란한 발재간으로 무대를 방방 날아다니면 유승준은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노래와 춤은 물론, 말재간과 유머감각을 두루 갖춘 그였다. 음반만 나오면 가요 순위 프로를 휩쓸던 당시의 톱스타 김건모나 신성훈과는 달리 '가위'를 제외하곤 별다른 인기곡도 없었지만 그는 한 시절을 풍미한 최고의 스타였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유승준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한창 인기를 누리던 2002년 돌연 미국 시민권을 취득,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며 병역 면제를 받은 그에게 국내 여론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1997년 깜짝 스타로 등장한 가수 유승준이 병역 기피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명사가 됐다. 당시 유승준이 갖고 있던 바른 생활 이미지에 대중에 친숙한 연예인이라는 점이 더해져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이 더욱더 컸다. 최근 유승준에 대한 비자 발급 거부가 위법이란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오자 그에게 '귀국길'이 열린 게 아니냐며 국민의 분노가 더 거세지고 있는 분위기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병역의 의무를 미이행하려 한 자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엔 석연찮은 이유로 병역을 피해가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어떤 이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집에 돈이 많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이유를 들며 병역의무를 회피한다. 그렇다고 이들 군 미필자들이 유승준처럼 모두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건 아니다.

 필자가 아는 군 미필자들 중에는 대통령도 있고, 총리를 거쳐 제일 야당의 대표직을 하고 있는 이도 있다. 개인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군 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이가 대통령으로 선출돼 국군 통솔권자도 됐고, 제일 야당의 대표직을 맡아 징병제와 모병제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으며, 아니 하지 못하면서 상대적 약자인 유승준만 미워하는 건 맞지 않는 일이다. 유승준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강한 자의 약점은 애써 외면하면서도 군 미필자 유승준의 입국에만 열을 올리는 건 올바른 판단인가. 병역을 기피한 유승준에게 쏟아지는 비난만큼,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의 의무를 내팽개친 이들에게도 똑같은 비난이 쏟아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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