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순이

삼순이 / 정찬일 지음 / 책과함께 / 524p / 2만 5천 원

 한 세대전까지만 해도 많은 언니, 누나들이 가난한 집안 형편에 학업 대신 일터로 나갔다.  그들의 삶은 또 다른 한국 현대사이다. 정찬일 씨의 책 <삼순이>가 그들의 삶을 전해준다.

 책제목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순이’는 우리나라 여성의 이름에 가장 많이 들어갔던 이름이다. 한자를 보면 ‘순할 순(順)’이다. 지아비와 집안을 잘 따르는 순한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딸들의 이름에 ‘순’자를 붙였다. 그래서 순이는 여성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이고, 지금도 여전히 농담처럼 쓰이고 있다.

 이 책은 이 땅의 수많은 ‘순이’,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세 ‘순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가장 많은 여성이 할 수밖에 없었던 ‘식모’, 하루에 18시간씩 버스안의 승객들이 꽉 차서 만원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버스 속에서 요금 수납과 안내 등 온갖 일을 도맡아야 했던 ‘버스안내양’, 유신 정권하에서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함에 따라 국가적 산업역군이 되어야 했던 ‘여공’. 그들이 삼순이다.

 저자는 제목을 정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다. 삼순이가 여성노동자들을 비하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많이 망설였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가장 고단했던 그들이 처해있던 시대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이 제목을 정했다.

 식모는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가장 많은 여성이 선택한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었다. 입 하나 덜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던 어린 여성들이 할 수 있던 일은 남의 집에 들어가 ‘하녀’가 되는 것뿐이었다. 식모였다. 월급은커녕 그저 받아주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다. 그래서 ‘셋방살이하면서도 식모는 둔다’고 할 만큼 식모를 둔 가구의 비율은 매우 높았다. 우리나라가 한때 전 가구의 30퍼센트 이상이 식모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식모들은 남의 집이라는 ‘사적 영역’에 머물던 탓에 온갖 부조리와 인권 유린을 감내해야 했다.
 
 대중교통이 열악했던 시절에 버스 안내양이 있었다. 그들은 버스에 간신히 승객을 밀어 넣고 올라서서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달리는 차에 아슬아슬 매달렸다. 승객으로 미어터지려는 버스의 최후 보루인 안내양이 못 버티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다. 버스에 마지막 오르는 안내양은 개문발차 사고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떨어져 버스에 깔려 죽고, 전봇대 등 도로 가설물에 부딪혀 죽고, 운전사끼리 앞지르기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뒤차에 깔려 죽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도 발생했다. 안내양들이 버티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버스 안 승객들의 안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었다.

 유신 정권 당시에 우리나라는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했다. 이번에는 여성들이 ‘산업역군’이 되었다. 여공이다. 그들은 ‘공순이’라고 불리면서 이 나라의 경제를 가장 밑에서 떠받쳤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만들어왔던 이 땅의 ‘삼순이’들게 바쳐져야 할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이 한국의 주류 역사가 잊은 이들에 대한 헌사라고 말한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이 살아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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