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의 인문학

고기의 인문학 / 정혜경 지음 / 따비 / 336p / 1만 7천 원


 

 최근에 TV에서 인상적인 광고를 보았다. 불판에서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면서 고기가 익어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한우 광고이다. 영상은 불판 위의 고기가 익어가는 장면뿐이다. 소리는 ‘지글지글’뿐이다. 짧은 광고가 끝날 때 회사 이름이 잠깐 보인다.

 지극히 단순한 광고이다. 우리 한우의 우수성 홍보도 없고, 과장된 표정으로 고기를 먹는 연예인 모델도 없다. 그런데도 한순간 멍해질 정도로 강렬하게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잘 익은 고기 한 점 씹으면 입안 가득 퍼지던 육즙이 떠오르면서 허기가 진다. 고기 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맛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한우 뿐만이 아니다. 상추 깻잎에 싸먹는 삼겹살구이, 단짠단짠의 간장치킨, 달고 부드러운 불고기, 먹는 순간 피와 살이 될 것 같은 삼계탕…. 이 세상에 고기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젓가락을 잡을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공장식 축산산업의 문제점을 생각하면 마음 편하게 먹을 수가 없다. 이 책에는 ‘미안하고 불안하지만 끊을 수 없는 고기의 매력이 만든 역사’ 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미안하다고 한 것은 고기를 먹으려면 필연적으로 생명을 해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안은 육식이 야기하는 각종 문제와 성인병에 대한 현대인의 공포를 말한다. 사육동물의 운명은 도대체 무엇인가. 오직 인간의 먹거리로 태어나기라도 한 듯, 머리를 돌릴 수 없을 만큼 좁은 공간에서 살다가 무참히 도살당하는 사육동물들을 생각하면 미안하다. 각종 항생제를 먹여 키운다니 불안하다. 그래서 육식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을 수 없으니 인간은 참으로 죄가 많다.

 안 먹을 게 아니라면, 어차피 먹어야 한다면,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
 30년 넘게 한국인의 음식 문화를 연구해온 호서대 정혜경 교수가 한식의 중심 밥을 다룬 <밥의 인문학>, 한국인의 생명줄인 나물을 다룬 <채소의 인문학>에 이어 <고기의 인문학>을 썼다. 밥, 나물에 이어 고기까지 드디어 따뜻한 한식 한 상이 차려졌다

 <고기의 인문학>은 저자가 우리 민족은 어떤 고기를, 어떻게 먹어왔을까에 관심을 가지고 고기를 통해 본 한국인의 역사이다. 저자는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환경 파괴를 극복할 고기문화의 미래가 우리 조상들이 고기를 먹어온 방식 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선사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고기 역사를 통해 한국인의 고기에 관한 역사와 문화, 과학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구려의 유적인 안악 3호분 벽화에는 외양간과 마구간뿐 아니라 고기를 보관하는 저장고도 그려져 있다. 고기를 갈고리에 꿰어 걸어놓은 저장고 그림은 귀족들이 고기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계급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고려는 살생과 육식을 금지했다. 그래서 소의 도축을 금지하는 우금령이 반포됐다. 조선은 소를 잡아먹다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될까봐 우금령을 반포했다. 그래도 백성들의 고기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우리 조상들이 고기를 먹는방식에는 채소가 꼭 함께 곁들여졌다.

 우리는 옛날에 비해 유례없이 풍요롭게 고기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고기를 잘 먹고 있는 걸까, 이 책이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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