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식 칠산행정사사무소 대표행정사/ 시인/수필가

이홍식 칠산행정사사무소 대표행정사/ 시인/수필가.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한다는 외식 몇 번 한 적 없었고, 언제나 혼자서 끓여 먹었던 라면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고, 마지못해 사주신 짜장면 하나에 너무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위 노래는 god라는 가수가 부른 ‘어머님께’라는 노래가사의 일부분이다. 견디기 어려운 살림살이지만 자식에게 짜장면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노래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시고 남겨진 7남매를 홀로 키우시면서 서로 먹으려 다투는 자식들에게 당신의 먹을 것 다 내주면서도 난 좀 전에 먹었으니 됐다고 우겨대시던 그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셨다. 어쩌다 닭이라도 한 마리 고았을 때면 목뼈에 붙은 작은 살점만 떼어 드시다 멀겋게 우려진 닭 국물 한 사발에 밥 말아 드시던 어머니, 간혹 생선이라도 한 마리 사 오실 때면 먹을 것 없는 대가리만 집어 드시던 어머니, 난 그때 살코기를 싫어하시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하지만 다시 웃고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 희생으로 무탈하게 성장한 자식들을 두고는 어느 날 깊이 잠이 드셨고 생전에 부르시던 이미자의 ‘울어라 열풍아’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들의 18번이 되었다.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 못하고를 통곡하듯 흐느끼는 어머님의 모습은 아마 내가 눈을 감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님의 어머니 강한옥 여사께서 향년 92세로 생을 마감하셨다.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을 맞아 거제도로 피난 온 실향민으로서 계란 행상과 연탄배달로 2남 3녀를 키우신 강인한 어머니였다. 생활고에 옥바라지까지 해가며 어려운 삶을 이어 왔으면서도 ‘그래도 행복했다’는 말씀을 남기셨다고 전하는 대통령님의 애틋한 심경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는 이 땅의 모든 어머님이 겪어온 우리 세대의 공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은 출세한 아들이 어머니를 곁에 모시고 살지 않은 점을 비난하는 모양인데 그건 참 아닌 것 같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출세한 아들 따라 서울 가서 산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불효자였기에 모시지 않았고 불효자이기에 따라가지 않은 것일까? 나도,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TV드라마를 보아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기 싫었고 주변 친구와 헤어지기 싫어서 고향에 정주하는 것이며, 자식들이 제 삶을 열심히 살고 가끔씩 얼굴을 비춰주면 그것으로 눈물겹도록 고마운 것이다. ‘다니던 성당도 친구도 모두 부산에 있어 떠날 수 없다’는 강한옥 여사님의 말씀도 당연한 진심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마 억지로라도 서울로 모셨다면 밀려오는 외로움 때문에라도 조금은 덜 행복한 여생을 보내시지는 않았을까 싶다.

 어머니를 곁에 모시고 살지 않았다며 나무라시는 그분 때문에 나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던 어머님과 함께 살지 않았던 불효를 반성해 본다. 하지만 어머니를 곁에 모시고 살지 않은 것을 비난하는 그분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 아울러 부모님의 죽음 앞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겪으신 강한옥 여사님의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