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가락국 시조릉

김종간 향토사학자.

납릉-허 척

성조당년벽차구

용비봉무수병도

운잉우모수유지

누사증휘억고도

 

보탑태황춘우윤

선대학거월륜고

분성물색다의구

유여소인감흥구

 

성조께서 이 지역을 개벽하실 때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 자수병풍이었네.

후손들이 사모하여 옛터를 중수하니

누각은 더욱 빛나 옛 도읍을 생각한다.

 

보탑의 거친 이끼 봄비에 촉촉이 젖고

학 떠난 초선대 달무리에 외롭구나

분성의 물색은 다분히 옛과 같아

시인묵객 더불어 머물며 감흥을 함께 하리라.

 

작가의 생몰년과 자세한 이력은 없고 『읍지』의 음사조에 “수로왕 음덕으로 장사랑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납릉-허 육

지이수출천명구

공해환산활화도

삼각유풍선성제

천추호겁구시도

 

원두녹초삼춘모

함외황성월영고

보마영운척강사

원언가영여군구

 

수로왕 나신 땅, 이름난 구역이라

바다를 끼고 산이 둘러 살아있는 그림이다.

삼각의 유풍은 옛 성인의 제도니

오랜 세월에도 여전히 옛 시대의 도읍이다.

 

들의 푸른 풀에 새봄은 저물어 가고

난간 밖 거친 성에 달그림자 외롭다.

보마로 신령스러운 구름에 오르내리는 생각은

원하건대 왕과 함께 노래 부르고 시를 읊는 것이라네.

 

작가 허 육은 『읍지』의 사마조에 “고종 임오방 진사”로 적고 있다.

 

제4장 흘러 흘러 1천 3백리 도요진, 뇌진, 황산강

 

도요진에서

도요저-김종직

동린유녀서린가

남방어래북방분

일편강연생사착

자손종볼몽경운

 

동쪽의 이웃처녀 서쪽 이웃에 시집가고

남쪽 배 고기 잡히면 북쪽 배에 나눠주네.

배 한 척으로 강가에 살아가기 힘들어도

자손들 끝내 농사 배우려 하지 않았다.

 

김종간의 미친소리 다섯 번째

 작가 김종직은 세종 13년(1431)~성종 23년(1492)의 인물로,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선산, 호는 점필재, 1453년(단종 1년) 진사, 1459년(세조 5년) 시견문과 급제, 1476년 선산부사, 1483년 우부승지에 오르고 이조참판, 예문과제학, 공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나 많은 시문과 일기를 남겼고 사학에도 능하여 1486년 신종호 등과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했다.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유효인, 남효은, 조 위, 이맹전, 이종준 등에 많은 정치적 영향을 끼쳤다. 후일 제자 김일손이 사관으로 사초에 수록해 무오사회의 단초가 된 그의 ‘조의제문’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해 의제와 단종을 비유하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것으로, 도학자로서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의제문’으로 부관참시 당하였으나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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