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미식가들

조선의 미식가들 / 주영하 지음 / 휴머니스트 / 352p 2만원

 “송이·생복(生鰒)·아치(兒雉, 어린 꿩)·고추장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은 아니다.”

 영조가 75세의 어느 날에 한 말이다. 조선의 문헌 <승정원일기>에서 고추장과 관련된 단어들을 검색하면 영조 대에서만 22건이 검색된다. 1752년 음력 4월 10일자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보면 도제조 김약로가 영조에게 “조종부의 장은 과연 잘 담갔다고들 합니다”라고 아뢰었고, 영조는 “고추장은 근래 들어 담근 것이지. 만약 옛날에도 있었다면 틀림없이 먹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승정원일기>에 고추장에 대한 기록이 있다니, 신기하다. 영조가 고추장을 좋아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가장 핫한 주제인가 보다. 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가 조선시대 미식가들을 사로잡은 음식에 관한 책을 펴냈다. 조선시대의 요리책을 비롯해 시집, 문집, 일기, 여행기, 세시기, 편지까지 당시의 기록문헌에서 음식 이야기를 남긴 사람을 가려 뽑아서 음식 경험과 취향을 정리하고 엮었다.

 고추장을 즐겨 먹었던 영조, 매운 것을 좋아해 고추장과 마늘을 듬뿍 올린 쌈을 즐긴 선비 이옥, 겨울밤 술과 함께 먹는 열구자탕을 극찬한 선비 이시필 등을 만났다. 조선은 집안의 요리법을 기록해 대대로 전한 사대부 부인들까지 살았던 시대였다. 남긴 글의 형식도 신분이나 성도 다르지만 각 시대에 유행했던 음식과 식재료, 요리법, 그리고 생생한 식후감까지 살필 수 있는 15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선시대 먹방이다.

 조선시대 왕이나, 선비라면 점잖아서 음식 이야기를 내놓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음식 프로그램에서는 식신로드 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전국 방방곡곡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식신로드라고 할 만큼 전국 각지의 음식을 고루 맛보았던 사람이 있었다. 요즘처럼 교통이 편한 것도 아니고, 맛집 정보가 있을 리도 없을 텐데 전국 각지의 맛을 음미했던 조선 미식가는 누구일까. <홍길동전>을 남긴 허균이다.

 명문가의 자제였던 허균은 어릴 적부터 입맛이 남달랐다. 허균은 1611년에 우리나라 팔도의 명품 토산물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책 <도문대작>을 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지역은 동해·남해·서해를 비롯하여 조선 팔도에서 빠지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책에 “벼슬한 뒤로는 남북으로 임지를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음식을 대접받았다. 이쯤 되니 우리나라에서 나는 음식이라면 고기며 나물이며 먹어보지 않은 게 없다”는 구절이 있다. 게다가 허균은 귀양까지 다녔으니 정말 전국 팔도의 음식을 맛보았다. 조선판 식신로드이다. 허균은 유배지에 가서 음식이 맛이 없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여러 음식을 종류대로 나열해 기록하고 때때로 보면서 고기 한 점을 눈앞에 둔 셈”치면서 음식에 대한 글을 썼고, <도문대작>을 남겼다. <도문대작>의 뜻을 풀어보면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맛있는 음식’이라는 유행과 취향을 넘어서, 우리 역사와 문화가 담긴 음식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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