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남명학박사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원장/

남명학박사

둘째의 경우 백년 묵은 나무의 속을 벌레가 먹어 썩어가는 형상의 국사에서 날로 민심이 이반되는 데도 악덕 관리가 요직에 있으면서 갖은 술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왕대비와 어린 왕의 위치로는 깊은 폐단을 끊을 수 없는 상환ㅇ내 서 나약한 국정을 수행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하여 부임을 거절한 것이다.

이때 승지 백인연, 신희부, 윤옥, 박영준, 심수경, 오상 등은 남명의 상소문이 말 같이 않다고 전제하면서 경상도의 감사가 받아서 올려보냈으니 승정원서 하는 수 없이 가지고 들어와서 보고하였다고 변명하였다.

즉, 승정원 관리들이 남명의 상소문을 사전에 검토하여 올리면서 시골에 사는 미치광이의 말이니 유념하지 말라는 제의를 해야하는데 그 말은 그들은 못했다고 하여 왕의 문책을 모면하려했다.

승지들의 이러한 처신은 정당치 못하다. 승지는 왕의 측근에서 모든 의견을 출납하는 책임있는 관리인데도 상소문이 문제가 되자 경상감사에게 책임을 전가할 뿐만 아니라, 남명의 말이 미치광이의 말이라고 하여 왕의 비위를 맞춘 불충이 신하가 아닐 수 없다. 측근 신하가 이렇게 말하자, 설사 급보를 제의하지 않더라도 큐탄해서 돌려보내야 하였는데 감사부터 신하된 원칙을 크게 어겼다”고 결말을 맺었다.

그런데 왕명의 이 같은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후 계속해서 남명의 상소문과 관련된 논의가 일어났고, 그때마다 학문하는 신하들은 남명의 지조를 옳게 보고 있다.

 

1555년(명종 10) 11월 20일 시강관 정종명이 말하였다.

“지시하기를 ‘임금과 신하 사이의 정분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전하의 뜻을 믿지 않고 지금의 기풍은 죄다 바른말 하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본다면 다른 날에 설사 임금 자리를 빼앗는 화가 생길지라도 임금의 녹봉을 받아먹는 사람으로서 누가 즐겨 임금을 생각하여 바른말을 하려 하겠습니까.

대체로 임금에게 말하는 원칙은 중앙과 지방이 다릅니다. 조정에 있는 신하들인 경우에는 그 말씨가 부드럽고 각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식과 같은 사람은 시골에서 사는 선비로서 단지 옛 사람들의 글만 알고 있을뿐이기 때문에 그의 말은 고지식하기만 하고 수식이 적은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옛 사람들의 책을 읽은 선비가 어떻게 임금과 신하 사이의 도리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전하는 ‘대왕대비는 어질기는 하지만 깊숙한 궁중에 있는 과부의 몸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가지고 공순하지 못하다고 하였지만 옛날 구양수는 황태후를 일개 부인이라고 하였어도 태후는 그에게 죄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식은 현행정사가 날로 틀려가고 있는 것을 보고 전하가 홀로 위에서 고립되어 아래의 형편을 모르는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속으로 생각하기를 설사 벼슬자리에 있더라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하의 신하노릇하기도 역시 어렵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전하를 모욕하는 말이 아닙니다. 만일 이런 말을 항상 명심해 둔다면 역시 나라의 복으로 될 것입니다. 조정에 가득한 신하들 치고 누구인들 나라의 은혜를 입지 낳았겠습니까, 나라의 혜택 속에서 태어나고 나라의 혜택 속에서 죽으면서도 아직 자기의 속을 다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저 조식은 시골의 한 선비로서 설사 목을 베이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이와 같은 말을 하였는데 전하의 지시에는 그의 공순하지 못한 죄를 대단히 책망하였습니다.

승정원은 임금의 목구명노릇을 하는 곳으로서 임금의지시를 내려보내고 아래 의견을 받아들이는 일을 미덥게 해야 하고 비단 지시를 공순하게 받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시를 받은 다음에는 응당 아래 의견을 좋게 받아들이도록 제의해야 하겠는데 그저 감사에게만 죄를 들씌우고 말았습니다.

이로부터 감사들은 틀림없이 상소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아래 의견이 우에 올라오지 못하게 되는 것은 승정원에서 그것을 막아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마디의 말이 나라를 일으킬 수고 있고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으므로 나라의 흥망이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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