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식 행정사

이홍식 행정사.

 미완의 역사 가야를 재조명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일 즈음 나는 김해시청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많은 기대와 관심 속에 시작된 가야사복원사업이 한창인데도 당장 가야가 되살아나길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했다.

 뜻밖에 가야사를 소설로 만들어 보라는 시장님의 지시를 받았다. 갑작스런 말씀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뭔가 새로운 일에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작가 섭외 등 어려운 게 한둘이 아니었다. 김해 출신 김○○ 작가도 만나보고 인지도 있는 소설가와 협의도 해보았지만 가야가 생소하고 팩트도 약하다는 이유로 모두 난색을 보였다.

 우연이었을까! 그즈음 시장님께서 잘 아시는 분과 식사를 하시던 중 가야사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뜻밖에 그분이 최인호 씨를 잘 안다며 만남을 주선해 보겠다고 하셨단다. 기쁘기도 하였지만 노심초사 염려하여 주신 시장님께 감동을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공항으로 최인호 선생님 마중을 나가게 되었다. 처음 만난 선생님의 첫인상은 뜻밖에도 수수하고 정겨운 표정이었다. 짙은 은발에 미소 띤 눈, 가늘게 다문 입술은 맘씨 좋은 동네 형 같았고 가끔 턱을 괴고 앉아 있을 때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케 했다. 선생님을 모시고 예정된 곳으로 가니 모두들 국보급 소설가를 모셨다며 상기된 표정이었고 가야를 소설로 재조명해 보겠다는 선생님의 얘기에는 모두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나 역시 말로만 듣던 최인호 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어 왔다.

 본격적인 자료 수집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가야시대 장유화상이 창건했다는 '은하사'를 시작으로 문화원도 다니고 역사학자들도 만나 자리를 함께할 때면 덩달아 유명인사가 된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모두 기록하신 최초의 작가로 남으실 거라며 아부 섞인 말씀을 올렸지만 실제로 '잃어버린 왕국', '해신' 등 고대 삼국의 역사를 소설로 남기신 분이기도 했다.

 선생님을 모시고 일본을 다녀오기로 했다. 대성동 고분군은 일본 왕실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곳이며 가야와 일본은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을 거쳐 다녀온 인덕천왕릉에서는 가야의 유물들이 출토된 곳이라 하니 더욱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둘러본 후 다누끼 우동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응신천왕릉을 찾았다. 일본 왕실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응신천왕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일본의 정복자였다니 가야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이듬해 1월에는 인도로 향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아유타국 왕손의 저택이었다. 미쉬라 왕손은 허황옥과의 인연으로 몇 차례 김해를 다녀가기도 했던 터라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김해에 있는 파사석탑이 인도 아요디아 지방에서만 출토되는 돌로 만들었다니 2천 년 전 수로왕과 허황옥의 국제결혼이 사실일 것이란 생각이 더했다.
 
 미쉬라 왕손과 인사를 나누고 아요디아 거리를 걸었다. 거리 곳곳에는 쌍어 문양을 새긴 건물들이 즐비했으며 우연히 들른 골목 안 상점에서는 뾰족한 돌기가 솟은 큰 조개껍데기를 발견했다. '이거 일본의 파형 동기 같지 않아? 오키나와에서 부적으로 사용하는 조개와 똑같아!' 모든 걸 가야와 연결 지으려는 선생님의 뜬금없는 얘기에 모두가 한바탕 웃기도 했다.

 2006년 4월 17일, 드디어 가야사 소설 '제4의 제국'이 탄생하였다. '이홍식 님께'라고 사인한 책을 받아 들고는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장 한장 읽을 때마다 참 힘들었지만 잊지 못할 추억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였으며 '제4의 제국'이 우리나라 고대사를 재정립하는데 큰 보탬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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