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희 시의원

박은희 시의원.

 추석 명절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한주의 시작, 월요일 하루가 지나간다. 이제 제법 아침, 저녁으로 아파트 베란다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선선한 느낌은 가을이 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57세에 맞이하는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올 한해도 봄, 여름 두 계절을 지나 청명하고 단풍잎이 물드는 가을의 문턱에 서 있다.

 내 나이 26살 되던 해, 88올림픽이 열렸던 10월 9일 한글날, 나는 종갓집 맏며느리로 결혼했다. 결혼한 지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년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연세만큼 점점 먹어가는 나이를 세어보며, 세월이 빨리 흘러감에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결혼 당시, 시댁 식구는 8남매 종손이신 홀시아버님, 시누이, 시동생과 함께 25평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친정에서 막내로 자라 집안일은 거의 해 보지 못하고 결혼한 탓에 한겨울 깊은 잠도 못자고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꺼지지 않게 갈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연탄구멍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석가탄을 피우기에 일쑤였다.
 
 그리고 추석, 설 명절 또는 기제사가 있는 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계단을 첫 아이, 둘째 아이 만삭 때도 수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차례 준비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이를 출산했을 때에도 아이는 등에 업고 유모차는 1층에서 5층으로 옮기고 차례를 지내기 위한 음식재료는 여러 차례 옮겨 날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어설픈 종갓집 맏며느리로 살아온 30여 년 세월의 나의 삶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자란 막내딸이 벌써 28살이 되었다. 나의 나이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먹어버린 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친정에서 막내딸이었던 나는 어머니한테 정말 살가운 딸이었던가 요즘 새삼 오래된 나의 비망록을 들춰 보고 싶어진다.

 딸은 20살이 되는 해 타지에 있는 대학교 입학 등으로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28살인 지금도 직장으로 인해 객지에서 자취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20년간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이 내 곁을 떠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참 오랜만에 객지 생활을 하는 딸이 추석 차례를 지내기 위해 한 꾸러미나 되는 선물을 안고 김해에 왔다. 딸과 함께 이번 추석연휴 기간 정말 오랜만에 정겨운 데이트를 했다. 딸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찻집에도 가서 차도 마시고 꽃집에 미리 예약해 놓은 해바라기 꽃다발 선물도 안겨준 마치 효녀 심청이 같은 엄마인 나를 진하게 감동시켰다.

 50중반이 훌쩍 넘은 나를 위해 딸은 어느새 우리 집안의 큰 울타리이자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수시로 문자로 나와 남편의 건강을 챙기기에 바쁘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와 남편의 내의 등을 구입해서 택배로 보내 주는 정말 살가운 보호자 역할을 톡톡히 잘 하고 있다.

 얼마 전 아들이 직장 입사 면접 시, 평소 좋아하지 않아 잘 먹지 않는 찹쌀떡을 오빠의 최종 합격 기원을 위해 오빠 대신 먹었다는 딸의 후기담을 들으며 가슴 뭉클함이 밀려 왔다. 그리고 얼마 전 할부로는 꽤 비싼 안마기를 구입해서 기사를 통해 설치해 SNS를 통해 수시로 건강을 챙기는 모습을 딸한테 보고해야 하는 행복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28살 먹은 딸은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365일 전천후 보호자가 되었다. 지금은 딸의 보호를 받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상 중 하나이지만 앞으로 세월이 더 많이 흘러 정말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몸이 쇠약해진다면 딸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그때에도 자연의 순리대로 우리 집안에 보호자인 딸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를 것 같다. 진정한 '보호자'가 되는 것은 상대방을 100%로 이해하고 배려해야만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해시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시 시민을 만날 때 '보호자' 같은 마음으로 만난다며 어떠한 '민원'도 실타래 풀리듯 아름답게 잘 풀릴 수 있을 것 같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어느 가을날, 보호자인 딸에게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데이트 신청을 제일 먼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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