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숙 문학박사/창원대 외래교수

이홍숙 문학박사/창원대 외래교수

 얼마 전 한글창제를 소재로 한 영화 개봉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감으로 들떴던 분위기가 있었다. 독립만세운동 100주년에다가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더해 졌기 때문에 ‘한글창제’라는 소재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진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과는 달리 영화 개봉 후의 반응은 거의 비난적 수준에 가까웠다.

 대다수가 지적하는 바는 역사왜곡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역사적 컨텐츠의 등장이 실망감을 안겨 준 것이었다.
 
 세종대왕의 위대성은 한글창제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자가 없어 절대적으로 중국의 한자문화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현실에서 세종대왕의 고민은 민족 자주와 주권이었을 것이다. 주권과 자주는 문자의 소유 유무와 관련이 깊은 것이다. 말은 있으되 글자가 없어서 우리말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남의 나라 문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세종대왕께서는 이를 과감히 혁파하고자 유생들의 극단적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을 창제하신 것이다.
 
 국민들의 영화에 대한 기대는 이 같은 세종대왕의 역사적 위업과 그 과정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영화의 문제점은 시사회를 통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등장인물의 존재감과 비중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 아니냐는 논란이 비등해졌고 다른 노이즈마켓팅과는 달리 영화는 관객들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지는 분위기였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흥행 여부는 그것의 소재가 진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영화의 목적 여하에 따라서 또는 관객들의 취향 여하에 따라서 영화의 존재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예술적 장르가 가장 기본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은 그 토대의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이해다. 그것이 바탕이 되지 않고 이루어지는 창작물은 창작을 위해 역사적 진실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이 진실 왜곡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역사적 진실을 이해하고자 감상하려는 자들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고 외면 받는다.

 최근 김해에서는 가야사와 관련하여 그와 관련된 사실을 소재로 활용한 창작들이 진행되었거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아직 창작되지 않은 것들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러나 기왕에 창작이 이루어 졌거나 하는 것들을 놓고 볼 때 앞에서 지적한 문제적 사실을 안고 있는 것들이 쉽게 눈에 띈다.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는 고찰을 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창작물을 목격할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에 아연해 진다.

 이것이 역사적 진실과 무슨 맥락이 닿아 있다는 말인가? 가령 김해의 노래 가사에 허황후와 관련하여 그 배경에 황금빛 들판이 등장한다면 이를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 김해가 평야로 자리한 것은 일제 강점기 녹산 수문을 막고 뻘밭을 개간한 이후의 일이지 않던가? 과연 ‘여의공주 이야기’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이던가? 만약 그렇다면 여의각은 무엇이었던가? 이야기는 이야기가 생성되던 시대가 존재한다. 그것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표면 그대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왜곡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기록이나 구전되어 오는 역사적 자료를 활용하여 다른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자가 반드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 사료의 생성적 배경에 대한 이해다. 왜냐하면 생성적 의미를 무시하고 개인이 다시 재창조한 것을 역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자에게 이것은 허위적 사실 이상의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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