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자 시의원

하성자 시의원.

 2019년은 금수현 선생이 탄생한 기미년으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금수현은 성악가, 작곡가·작사가, 지휘자, 음악교육가, 음악행정가, 음악기획자, 음악보급운동가로, 본관은 김녕(金寧). 아호(雅號)는 낙초(洛初)이다.

 금수현은 경남 김해군 대저면 사덕마을 2650번지에서 정미업과 땅콩재배 농가 토호 김득천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김수현(金守賢)이나, 경남여고 교감이던 27세 때 한자 이름을 김수현(金水賢)으로 개명하고 활동명을 한글이름 금수현으로 바꿨다. 선생이 지었다는 한글자녀이름 금난새, 금노상, 금누리 현재 후손들도 법적으로는 김씨이나 금씨로 활동하고 있다.

 개화기 선교사에 의해 소개됐다고 하는 양악은 1900년 민영찬의 주청으로 독일인 에케르트(Frentz Eckert)가 주도하고 백우석이 통역과 관악 연주법을 맡아 양성한 악대가 1901년 정규 군악대가 됨으로써 우리나라 양악 여명기를 밝혔고, 훗날 금수현은 'G clef' 대신 '높은음자리표'라는 우리 말 용어를 고안하는 등 양악계 저변확대에 기여했다.

 대저보통학교 4학년 때 교사 김두성으로부터 음악적 영향을 받은 금수현은 음악전반에 재능이 탁월해 부산에서 상고를 다니면서도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아 일본 동경 음악학교에 예과를 거치지 않고 본과에 바로 합격한다.

 1941년 김해 마산 등지에 노래극 순회공연을 했으며, 농촌계몽연극 <강팔십>을 만들어 사덕마을과 김해 읍내 공연을 했다. 1942년 동래여고, 경남여고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했다. 1943년, 선생의 제자이자 동래교회 피아노 연주자인 전혜금과 결혼했다. 장모인 소설가 김말봉이 곡을 붙여 달라며 외우는 자작시에 큰 감명을 받은 사위 금수현이 그 즉석에서 15분 만에 작곡했다는 가곡이 바로 <그네>이다.

 금수현은 동경유학시절 문화운동 사상범으로 80여 일간 옥살이를 했으며, 1945년 만세행렬을 보고 행진곡 <새노래>를 작곡한 애국지사다. 1956년 통영여고 교장, 1967년 문교부 편수관, 영필하모니 악단 이사장, 월간지《음악》창간, 국정교과서 편찬위원, 숙명여대 강사 등 활동을 했다. 1960년 녹조훈장, 1981년 외솔상을 수상했고, 저서로 『음악의 문』,『거리의 심리학』, 창작집으로『가곡집 Ⅰ·Ⅱ』등이 있다.

 1978년 김해시 대저면이 부산시에 편입됨으로써 선생이 부산사람으로 인식되니 김해시가 선생의 행적 사료 및 그가 작곡한 당시 김해시 관내 교가 등을 자료화하고 조명할 필요가 있다. 경남음악콩쿠르를 통해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발굴해내는 등 대한민국 양악계의 저변 확대에 기여한 금수현은 대한민국 양악계의 높은음자리요, 김해의 작곡가임에 분명하니 김해의 문화적 자산이요, 자부심이다. 2019년 7월 22일, 금수현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 공적을 흠숭하여 이 글로 받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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