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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양국 국민이 풀어야 할 한일관계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 이흥섭 구술, 이동순 글, 번역공동체 잇다 옮김 / 논형 / 280p / 1만 5천 원

 2005년 8월, 일본으로 윤동주 시인 문학기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를 찾아갔다. 형무소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불볕더위만큼이나 시인을 기리는 일행들의 마음도 뜨거웠다. 후쿠오카에서 1995년부터 활동해 오고 있는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회원들을 만났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주부, 교사 등 일본의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 윤동주 시를 읽으며 토론하고 감상하는 모임이다. 후쿠오카현의 시민문화센터에서 그들과 함께 문학세미나를 가졌는데, 한 일본인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그 할머니는 교사로 평생을 일하고 퇴직했다. 그 분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고결하고 맑은 정신세계를 가진 윤동주 시인을 일본이 죽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제자들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제 교실에는 가난하고 헐벗은 조선 아이들과 그만큼 가난한 일본 아이들이 함께 있었지요. 그 아이들은 힘 있는 아버지를 둔 풍족한 일본아이들에게 똑같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일본에는 저처럼 일본이 조선에 저질렀던 일과, 일본 국민들을 전쟁의 광란으로 몰고 간 일을 똑똑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한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직 살아남아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 때,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저의 제자였던 그 조선 아이들을 잊지 못할 겁니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는 일본에 강제징용자로 끌려갔다가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딸이 받아 쓴 책이다.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한 일본인 교사의 노력 덕분이다.

 이 책의 시작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이흥섭 씨의 딸 이동순 씨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담임교사 무로타 다쿠오 씨는 제자 이동순에게 겨울방학 동안 '아버지의 역사'를 써보라고 제안했다. 이동순은 1977년 겨울방학 내내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무로타 다쿠오 씨는 이흥섭 씨의 체험기를 보면서 재일조선인 1세의 증언 중에 이 정도로 자세하고 잘 정리된 글이 또 있을까 생각했고, 주변 교사들에게도 알렸다. 강제징용의 역사를 이흥섭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일본인들은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다. 교사들은 교육의 장으로 이흥섭의 경험담을 가져오고, 그 증언을 들은 학생들이 연극으로 재현하는 활동이 계속됐다. 오사카 지역의 교사들과 출판관련 일을 하는 일본인들이 강제징용 피해자 이흥섭 씨의 경험을 알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8년 일본에서 첫 책이 나오고, 몇 년 후 속편을 또 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에 이 책을 번역출판했다.

 우리가 이 책을 알기도 전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는 생각에 책을 알리는 활동도 했던 일본인들이 고맙다. 한일관계를 풀어가는 가는 데에는 양심적이고 성숙한 양국 국민의 힘이 필수적이다.

김해일보  gimhae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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