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인연 / 피천득 지음 / 민음사 / 300p / 1만 5천 원

 
 

김다혜 김해율하도서관 사

△사서의 추천이유
 개인적으로 피천득 작가처럼 '청자(靑瓷) 연적'과도 같은 수필을 써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다. 길어봐야 세 장 남짓의 간결한 글에 그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10대, 20대, 30대에 걸쳐 그의 글을 읽어왔지만 설레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그 중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라는 작품을 특히 좋아한다. "나는 잔디 밟기를 좋아한다.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지기 좋아한다.…"와 같이 작가가 사랑하는 것들을 열거한 글이다. 문득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떠올려본다. 행복이 별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인생에서 작지만 선명한 행복을 찾는 산책을 떠나보기를 바란다.

 

피천득 선생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특유의 섬세하고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고른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선생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 이름도 없을 것이다. 2007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작품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선생을 아는 사람들은 대표작 '인연'을 비롯하여 ‘수필’ ‘플루트 플레이어’ 등을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을 것이다. 그 수필들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문장에 감동받았고, 그 이름이 강렬해서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수필하면 피천득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자연스레 따라왔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그 수필 역시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수필이란 이렇게 써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피천득 선생의 글은 특유의 천진함과 소박한 생각, 단정하고 깨끗한 미문으로 완성된 담백하고 욕심 없는 세계를 펼쳐준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없이 오롯이 그 문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민음사에서 펴낸 이 개정판에서는 기존에 수록된 원고 이외 ‘기다리는 편지’ ‘여름밤의 나그네’ 등 2편을 추가했다. 박준 시인의 발문과 생전에 박완서 선생이 쓴 추모 글, 피천득 작가의 아들 피수영 박사의 추모 글을 수록해 다양한 관점에서 피천득 작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선생의 글은 문인들에게도 많은 감흥을 준다. 특히 이 책에 서문을 쓴 박준 시인은 가장 많이 읽은 책으로 ‘인연’을 꼽았을 정도로 피천득 선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박완서 선생의 글에서는 피천득 선생의 인품을 짐작하게 한다. 박완서 선생이 아들을 잃고 상심에 빠져 있을 때 누구보다 깊은 위로를 전한 피천득 선생의 사려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이다.

 피천득 선생이 수필에 대해 쓴 글 한 대목을 읽어보자. 제목 역시 '수필'이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선 세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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