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희 시인

해반천을 걸으며

장정희 시인
 
 
내 안에서 점멸등이 신호를 보낼 때
실뭉치 하나 들고 뜨개질하듯 해반천을 걸어 
삼계교(橋) 이르면 마중 나온 유년의 목소리들
시끌벅적, 나팔꽃으로 피어 반겨 주네    
 
하교 후, 천(川)을 따라 
노란 주전자 들고 아버지 술 심부름하던 때
여린 종아리에 석양을 걸고 삐비꽃 씹던 때
시계풀꽃 꺾어 꽃반지 만들던 때 
공병학교 군인들 삼삼오오 모여 빨래하던 곳    
 
그들은 떠나갔어도
시간이 묶어놓은 추억의 보따리는
금관가야의 숨결에 업혀 흐르고 있다
물이 만든 길을 따라
길이 만든 물을 따라
누대의 전설부터 가야왕도 김해의 긍지 품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푸른 생명의 터 
 
해반천은 나에게 목도리 같은 것  
해지지도 않을, 분실할 염려도 없는
저 물빛 같은 목도리 두르고
나는 오늘도 걷는다
 
 
약력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김해문인협회 회원
샘시 동인

양민주 시인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배도 부르지 않는 추억을 먹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무튼 나도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시인은 어릴 적 해반천을 따라 들에서 일하시는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한 아릿한 추억이 있다. 이를 떠올리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시가 밥이 되는 이유다. 겨울엔 따뜻한 목도리가 되는 해반천, 푸른 생명의 터, 김해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여린 종아리에 석양을 걸고 삐비꽃 씹던 때’라는 표현은 어릴 적 추억을 호명한 시적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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