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지명관계는 아니지만 ‘김해 사람 아니면 감옥소가 빈다’, ‘김해 사돈 울산 사돈 감옥소에서 만난다’란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뜸한 것 같다. 이것도 일제강점기에 김해 농민들이 농민운동을 일으켜 “왜놈은 물러가라. 우리 농토 돌려다오.”라며 저항하다 붙잡혀 가고 울산으로도 번져 대량 투옥된 후 만들어진 것이다.

 그 사연은 덮어둔 채 결과만을 갖고 폄하하는 말만 했으니 얼마나 일제에 순치되었나 짐작할 수 있다. 외국이나 다른 지방에는 없는 설화도 만들어 관광자원화하는데 엄연히 존재하던 역사마저도 외면해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언제 어디서나 내가 재임 시에 바꾼다는 소영웅주의가 날뛰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역사란 다 그렇고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면 할 말이 없다. 우리 고장의 역사성을 잘 살려 나가는 것이 애향하는 길이다.

 

가야 고도 김해의 옛 문인

한반도 예술 시원지 김해

 긴 강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가야 고도 김해가 한반도 문화예술의 시원지라는 해석은 자연스런 귀결이라 하겠다. 그 중심점에 <구지가>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구지가>는 국문학상 우리나라 최초의 집단적 서사시며 최고의 주술적 무가이다.

 신탁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노래다. 노동요, 의식요, 원시인의 성욕에 대한 은유적 표현, 잡귀를 쫓는 주문, 천신족의 해산요 등등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하다.

 물론 고구려의 <황조가>가 서정시로서 <구지가>보다 연대는 앞서 있지만 현장성이 없고 고조선의 <공무도하가> 또한 지명이 없다. <구지가>만이 구지봉이라는 공간성, 현장성을 갖는 것이다. 뿌리가 깊으면 뿌리가 무성하다 라는 말이 있다. 잎이 무성하려면 뿌리가 깊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현대문화는 고전의 토양에서 뿌리 한다. 우리 국문학상 고전의 실체를 튼튼하고 귀히 여기는 바탕에서 현재와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

<구지가>와 문명의 시원성

 몰톤은 민요 무용설에서 문학적 요소는 음악과 더불어 분화했다고 말하고 있다. 몸짓은 무용과 연극으로 소리는 음악으로 밀은 시(문학)로 분화되고 독립된 것이다. <구지가>, 가야금, 금관옥적, 가야무 등으로 분화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김해지역은 한반도의 문화, 음악, 무용의 시원지 즉 예술의 시원지였던 것이다. 한반도 문명의 발상지 가야 고도에 자리한 구지봉과 유럽문화의 시원지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그 내용의 비슷함에 놀랍다.

 철기문화에서도 그리스가 발칸반도에서 처음으로 유럽에 철을 생산 전파한 것과 같이 북동아의 가야는 낙랑, 대방 등 한의 군현과 왜에 철기문화를 전파시켰다.

 한반도 최남군 구지봉은 신비한 에너지가 충천하는 곳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마지막 끝에서 모이는 곳이다. 피뢰침의 끝에 전기에너지가 모이듯……. 그러므로 가야가 생기기 전 구야국 시대도 <동의전> 변진조에 기록되어 있듯 술과 가무를 즐겼던 것은 원시적인 예술적 기질을 충분히 받았음을 알 수 있다. 2000여 년 전에 이미 오늘날의 가치관인 문화 예술성, 고도기술성, 국제성, 민주성, 배려성이 가야인의 기질과 정신 속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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