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숙 문학박사

이홍숙 문학박사/창원대 외래교수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김해 장유에는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내방가사 한 편이 전해 온다. 규방가사로도 불리는 내방가사는 조선 영조 영남지역의 양반집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문학적 장르다. 내방가사의 내용은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주제와 소재는 대부분 양반집 부녀들의 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유교적 교훈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사회적 활동과 괴리되어 가정에 속박 되다시피 한 여성들의 생활에서 느끼는 애환과 정서적 표현이 주된 내용이다.

 일반 여염집 여성들이 민요라는 장르로써 자신들의 처지나 정서를 호소했다면 양반집 여성들은 내방가사라는 장르를 통해서 글로써 그들의 생활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내방가사라는 장르의 신분적 위상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방가사는 6.25를 기점으로 소멸되는 면모를 보였으나 지금은 관습적 맥을 이으려는 동호인들 중심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조순남 여사가 남긴 《김승태만세운동가》는 내방가사의 주류적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내방가사가 여성들의 생활에서 소재를 찾아 유교적 교훈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면 조순남의 내방가사는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되 내용적 측면에서 여성들의 일상생활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일제의 국권침탈(國權侵奪)이라고 하는 시국적 상황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조순남의 《김승태만세운동가》를 좀 더 정확히 규정하자면 '구국내방가사(救國內房歌辭)'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내방가사로 이미 알려 진 것 중 김우락(金宇洛1854-1933) 여사의 《해도교거사》가 있다. 김우락 여사는 석주(石州) 이상룡(李相龍1858-1932)선생의 부인이다. 《해도교거사》에는 일가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안동에서 간도로 이주해 가는 과정과 정착해 가는 과정의 눈물겨운 역사가 들어 있다. 제작 연대는 대략 1911(辛亥年)년으로 추정한다. 가사 제작 당시의 김우락 여사의 연령은 60세 전후로 알려져 있다. 또 안동의 권오원 여사의 《눈물뿌린이별사》도 독립운동을 내방가사화 한 것으로 전해온다. 이 또한 국가의 독립을 위해 안동에서 간도로 이주해 가는 과정과 정착, 그곳에서의 항일운동 등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최근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창작 오페라 「석주 이상룡」이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작으로 제작되어 광복절을 전후해서 안동과 서울에서 공연된다고 한다. 이 오페라의 내용의 많은 부분이 김우락 여사의 《해도교거사》를 참고로 한 것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오페라라고 하는 장르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 낯설게 다가오긴 하지만 한 편으로 생각하면 그 장르가 오페라이건 뮤지컬이건 무슨 상관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생의 행적을 통해서 그 정신을 알리고 계승하자는 것이라면 장르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이 예술적 형태로 무대에 오르고 그의 행적과 정신이 노래로 불리어 지는 것에는 사실을 뒷받침 하는 기록물 《해도교거사》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작품이 좀 더 많은 리얼리티를 확보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된다. 이 사업은 경북도와 정부가 공조하여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조순남의 《김승태만세운동가》를 다시 살펴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조순남의 내방가사는 조순남 여사 자신이 지니고 있던 유교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충(忠)의 개념을 아들에게 투사하고 있다. 백성이라면 당연히 국가와 임금께 충성해야 하고 국가와 임금의 존위가 찬탈 당하고 백성의 삶이 외세에 의해 침탈당하는 상황이라면 백성의 한사람으로서, 나아가 올곧은 선비로서, 그리고 지역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아들의 의연함을 찬양하면서 행보 하나하나를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필치로 묘사해 놓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순남 여사는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쓴 《김승태만세운동가》는 더없는 교훈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앞의 김우락 여사와 같이 당시의 그의 나이도 60이었다.

 깜빡하면 시청의 창고 깊숙한 곳에 버려진 채 깊게 잠들어 있을 법 했던 '구국내방가사' 《김승태만세운동가》를 찾았다는 기쁨과 함께 이것을 어떻게 살려 낼 것인가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학술적 연구와 저술,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가 이를 살려 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김해시가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줄 것을 기대한다.

 아직도 멈추지 않은 일본의 만행을 눈뜨고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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