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 시인

서상동, 바람의 골목

이윤 시인

여기
바람 부는 골목을 걸으면
그 길 한 모퉁이에서 문득
마주 오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처마의 벌집들이 몸부림치며 날아간 자리
말갛게 남아 있는 하늘과
순한 눈에는 이슬 한 방울로 둥실
떠오르고 마는 하늘과
안녕, 안녕하였지만

여기
이곳에 들어서면
땀방울 씻어주는 유일한 골목길
그리움은 더 이상 나가지 않습니다
이국의 젊은이들 다소곳이 담뱃불 껌벅이는
양면은 소리 없는 길
골목은 생(生)보다 앞서 있고
한 시간 혹은 한 생애 두고
골목길은 언제나 바람보다 앞서 있지만
 
아침은 언제나 어둠보다 앞서 있고
이미 떨어진 꽃잎처럼 꼼짝하지 않는
묵인 골목에 묶여서 우리
제각기 멈춘 골목길 되어 끼어들면서
함께 의좋게
서상동, 바람의 골목에 서서

 

약력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신인상
시집 <무심코 나팔꽃>
김해문인협회 회원

양민주 시인.
바람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시를 있게 한 것은 8할이 바람이다"라고 말해 본다. 시인은 서상동 바람 부는 골목을 걸으며 문득 마주 오는 당신을 생각하게 된다. 바람 부는 골목은 그리움을 불러오는 원천이다. 사람의 탄생보다 사람의 죽음보다 앞서 자리하고 있는 이 골목에서 소리 없이 담뱃불 껌뻑이는 이국의 젊은이와 함께 의좋게 사는 꿈을 꾼다. 이 골목에는 그리움과 더불어 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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