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 협회장

 기묘년 11년 그믐

-부마 이승을 하직하다

 부마가 시름시름 앓은 지도 달포 반, 여의 낭자가 죽은 후로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갔다. 금관 편작이라 불리우는 어의의 탕제와 정성에도 아무런 효험이 없다. 여의가 죽기 전만 해도 날이 흐를수록 나의 의연하고 따뜻한 모습에 미안한 마음과 나에게 가까이 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 후로 그녀의 원혼이 부마의 전신에 파고든 듯 부마는 생명의 기력을 급격히 잃어갔던 것이다. 부마는 별 말도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 부마는 이렇게 가고야 마는가.

 백조는 죽음 직전에 생애의 침묵을 깨고 감미로운 마지막 노래를 하고 숨을 거둔다던데……한 여인으로 태어나 부부지간의 정을 나누어 보지 못하고 거기다 국력을 키우고 부모님에게 효를 바치고 싶었다지만 그것마저 무산되었으니…….

 내가 전생에 지은 입장이 얼마나 두터워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측은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기야 산다는 것은 찰나에 일어나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그 일으켰던 바람을 탁로 나는 새깃에 실려 저 무한대의 하늘길로 사라지는 것일 것이다. 가고 나면 아무도 다시 오지 못하는 저승길……


그 님은 가버리고 원앙침 남았어라

저승길 마다 하나 문밖이 저승인데

가신 님 어이하여 다시 오지 아니한가

한밤중 일어나서 창밖을 바라보니

청천 하늘 새벽별 저만치 졸고 있네

우수수 오동나무 바람 더욱 차갑구나

어느덧 달도 차고 은하수 기울었네

부마도 사별하고 충효마저 못 이뤘네

아득한 천지간에 이 마음 누가 알리

 

 새벽하늘엔 북두칠성도 기울었다. 나의 뇌리엔 불현 듯 출가입산 수도란 생각이 떠올랐다.

 

기묘년 12월 16일

-황후사와 백설

 어마마마 숙황후의 권유대로 황후사를 방문했다. 황후사는 할바마마 절지왕께서 세우신 사찰이다. 그는 도를 숭상하고 백성을 끔찍이 사랑하시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는 시조모 허황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허황후가 합환한 자리에다 절을 세우고 액자에다 황후사라 하였다. 또 사자를 보내어 근절방의 평전 10결을 측량하여 3보를 공양하는 비용으로 삼게 하시었다.

 요사채에 들어서니 경운대사가 청마루에서 우리 일행을 맞으신다. 이미 대사께서는 저간의 사정을 듣고 계시었다. 경운대사는 “공주마마 번뇌의 입장으로부터 모든 사단이 일어나니 이를 여의게 함이 만병통치의 근원이 됩니다. 모든 번뇌 잊으소서, 나무관세음보살.”가슴에는 슬픔의 물결이 도도히 흐르고 때로는 약간의 화도 함께 일어나기도 하였다. 공주의 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런 변고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도 가시질 않았다. 귀궁하는 길에 하늘에는 흰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황후사 되오는 길 백설이 분분하다

이 백설 이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차라리 여염이나 한없이 부럽고저


 경운대사의 마지막 하신 말씀이 다시 귀에 쟁쟁하며 나를 나무라는 듯 위로하는 듯하다.

 “모든 것에서 거리낌 없는 사람이라야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리니,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 자유로워지소서, 모든 속박 사라지소서. 오 진여, 해탈 열반하소서…….”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